십여 년 전 처음 콜드브루 커피를 마셨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대부분의 카페에서 콜드브루를 쉽게 만날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처음 마셔본 콜드브루는 평소 알고 있던 에스프레소나 핸드드립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차갑게 마시는데도 커피의 향이 부드럽게 이어졌고, 강한 쓴맛보다는 편안한 질감과 은은한 단맛이 오래 남았습니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질문을 계기로 콜드브루 추출 연구와 장비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맛있는 레시피를 찾는 것이 목표였지만, 연구를 계속할수록 콜드브루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변수가 작용하는 추출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추출 온도, 분쇄도, 물과 커피의 비율, 추출시간, 물의 흐름, 커피층의 두께, 여과 방식 등 수많은 조건을 바꾸면서 테스트했습니다. 침지식뿐 아니라 투과식, 빠른 추출 방식, 진공을 이용한 추출 방식까지 여러 방법을 직접 실험했습니다.
콜드브루를 처음 접하면 분쇄한 커피에 찬물을 붓고 오랜 시간 기다리면 되는 커피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추출해 보면 같은 원두를 사용하더라도 조건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특히 상업적으로 콜드브루를 생산하려면 한 번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추출한 커피와 내일 추출한 커피의 맛이 비슷해야 하고, 소량으로 테스트했을 때의 품질이 생산량을 늘렸을 때도 최대한 유지되어야 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재현성입니다.
그래서 저는 콜드브루를 단순한 레시피가 아니라 하나의 추출 시스템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온도, 시간, 유속, 물의 분산, 커피층의 포화 상태와 여과 조건까지 함께 제어해야 안정적인 맛을 반복해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커피 추출에서 물의 온도는 매우 중요한 변수입니다. 일반적으로 물의 온도가 높을수록 커피에 들어 있는 여러 가용성 성분이 빠르게 물속으로 이동합니다.
반대로 낮은 온도에서는 성분이 용출되는 속도가 느려집니다. 그래서 콜드브루는 뜨거운 물을 사용하는 일반적인 커피 추출보다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UC Davis Coffee Center에서 진행한 연구에서는 서로 다른 온도에서 커피를 추출하고, TDS가 더 이상 크게 증가하지 않는 평형상태까지 관찰했습니다.
연구에서 나타난 평균 평형 TDS와 추출수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 위 수치는 UC Davis Coffee Center의 콜드브루 추출 온도 관련 연구 데이터를 참고한 값입니다.
이 결과를 보면 높은 온도에서 더 많은 가용성 고형분이 추출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TDS는 Total Dissolved Solids의 약자로 음료 속에 녹아 있는 고형분의 농도를 의미합니다.
커피 추출에서는 매우 중요한 데이터입니다. 추출된 커피가 어느 정도 농도를 가지고 있는지 객관적인 수치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TDS가 커피의 맛을 평가하는 점수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두 잔의 콜드브루가 동일하게 TDS 4%라고 하더라도 향, 단맛, 산미, 쓴맛, 떫은맛, 질감과 후미는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콜드브루를 연구하면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깨달은 부분도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이후의 테스트에서는 TDS와 추출시간 같은 수치만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실제 음용 시 느껴지는 향의 선명도, 단맛, 쓴맛, 떫은맛, 질감과 후미를 함께 평가했습니다.
콜드브루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입장에서는 추출시간이 생산성과 직결됩니다.
12시간 걸리는 추출을 6시간에 끝낼 수 있고, 6시간 걸리는 것을 1시간으로 줄일 수 있다면 생산효율은 크게 높아집니다.
그래서 개발 과정에서 계속 질문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여러 방식의 추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침지식은 물론이고 물의 흐름을 변화시키는 방식, 추출을 적극적으로 촉진하는 방식, 진공을 활용해 추출시간을 줄이는 방법까지 테스트했습니다.
실제로 일부 방법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도 높은 TDS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숫자만 보면 상당히 효율적인 추출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블라인드 관능평가를 진행하면 결과는 달랐습니다.
고형분 농도는 높았지만 입안에서 오일리하거나 텁텁한 느낌이 증가하는 경우가 있었고, 제가 콜드브루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깨끗한 향미와 부드러운 후미가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결국 추출시간을 줄이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으면 제가 원하는 콜드브루의 맛과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콜드브루 추출 방식은 크게 여러 종류로 나눌 수 있지만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법은 침지식과 투과식으로 비교하는 것입니다.
침지식은 분쇄된 커피를 물속에 일정 시간 담가두고 추출하는 방식입니다. 구조가 비교적 간단하고 많은 양의 커피를 한 번에 추출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 투과식은 물이 커피층을 지나가면서 커피의 성분을 추출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투과식이라고 해서 단순히 위에서 물을 천천히 떨어뜨리기만 하면 좋은 콜드브루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커피층 전체가 균일하게 젖어야 하고, 특정 부분으로만 물이 흐르는 채널링을 억제해야 합니다. 추출이 진행되는 동안 유속이 크게 변하지 않아야 하며, 무엇보다 낮은 온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처음부터 투과식이 정답이라고 정해놓고 연구하지 않았습니다.
침지식도 해보고 빠른 추출 방식도 테스트했습니다. 분쇄도를 바꾸고, 추출 온도를 바꾸고, 유속을 변경하고, 추출시간을 줄이는 실험도 반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커피를 마시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반복해서 나타나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콜드브루는 단순히 진한 커피가 아니었습니다.
부드러운 질감
과하지 않은 쓴맛
잡미가 적은 깨끗한 후미
희석한 이후에도 살아 있는 커피의 개성
이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 가장 안정적으로 좋은 결과를 보여준 방식이 바로 저온 투과식 추출이었습니다.
낮은 온도를 유지하면서 물이 커피층 전체를 천천히 통과하도록 하고, 물의 공급과 유속을 일정하게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결국 제가 개발한 콜드브루 추출 설비도 이러한 원리를 안정적으로 반복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 끝에 관련 기술은 특허로 이어졌고, 실제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수준까지 추출 품질을 끌어올렸습니다. 현재도 대량으로 콜드브루를 생산하는 업체에서는 제가 개발한 추출 설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카페에서 한 잔의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것과 수십 리터 이상의 콜드브루를 일정하게 생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생산량이 증가하면 커피층의 높이와 두께가 달라지고, 물이 이동하는 경로도 바뀔 수 있습니다. 추출 초반과 후반의 유속이 달라질 수도 있고 커피층 일부에 물길이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대량 추출에서는 단순한 레시피보다 공정 제어가 중요합니다.
제가 콜드브루 머신을 개발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도 이 부분입니다.
같은 맛을 반복해서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온도, 추출시간, 유속, 커피층의 포화, 물의 분산과 여과 조건이 일정해야 원두가 가진 맛을 안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학술적으로 모든 콜드브루에 적용되는 단 하나의 정답이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원두 품종, 가공 방식, 로스팅 정도, 분쇄도, 물의 성분, 추출 비율과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서도 최적의 조건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십여 년 동안 다양한 방식을 직접 추출하고, 데이터를 측정하고, 관능평가를 반복한 제 경험에서는 결론이 비교적 분명합니다.
물이 커피층을 균일하게 통과하도록 설계했을 때
가장 안정적으로 좋은 맛을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추출시간을 무리하게 줄이면서 높은 농도를 얻는 방식보다는 저온에서 천천히 성분이 용출되도록 하는 방식이 제가 원하는 깨끗한 향미와 부드러운 질감을 만드는 데 더 좋은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십여 년 전 우연히 마셨던 한 잔의 콜드브루가 결국 저를 추출기 개발까지 이끌었습니다.
그동안 더 빠른 추출도 시도했고, 높은 농도를 만드는 방법도 실험했습니다. 침지식과 투과식뿐 아니라 여러 추출 원리를 실제 장비에 적용하면서 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남은 기준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TDS와 추출수율은 매우 중요한 데이터입니다. 하지만 커피의 최종 평가는 향과 맛, 질감 그리고 마신 뒤 남는 후미까지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제가 찾은 답은 저온 투과식 추출이었습니다.
좋은 콜드브루는 단순히 찬물에 오래 담가둔 커피가 아닙니다.
온도와 시간, 물의 흐름과 커피층의 상태까지 세밀하게 설계해 만들어지는 커피입니다.
그리고 지난 십여 년 동안 콜드브루 추출을 연구하고 기계를 개발하면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온 것도 바로 이러한 추출의 재현성입니다.
본 글에서 소개한 추출 온도별 TDS 및 추출수율 데이터는 UC Davis Coffee Center의 콜드브루 관련 연구와 Specialty Coffee Association에서 소개한 연구 내용을 참고했습니다.
저온 투과식 추출 방식에 대한 평가는 필자가 십여 년 동안 진행한 콜드브루 연구개발, 추출 테스트 및 관능평가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