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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팅 직후 원두로 콜드브루를 만들어도 될까? 디개싱과 추출의 관계

by oz4832 2026. 8. 30.

로스팅을 끝낸 지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원두가 있습니다. 향을 맡으면 굉장히 강하고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이 원두를 바로 갈아서 콜드브루를 만들면 가장 향이 좋은 커피가 나올까요?

 

생각보다 답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로스팅 직후의 원두에서는 이산화탄소(CO₂)가 계속 빠져나오는 디개싱(degassing)이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핸드드립이나 에스프레소에서는 이 현상이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만, 콜드브루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낮은 온도에서 몇 시간 이상 추출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CO₂와 물, 분쇄도, 추출 시간의 관계를 함께 봐야 합니다.

 

✔ 먼저 결론부터

로스팅 직후 원두로도 콜드브루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사용할 수 있다'와 '가장 안정적인 맛이 나온다'는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갓 볶은 원두는 내부에 CO₂가 많이 남아 있으며 분쇄 후 빠르게 가스를 방출합니다. 따라서 로스팅 후 경과 시간이 다른 원두를 동일한 레시피로 추출하면 향미와 추출 결과의 재현성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노트북과 스마트폰이 놓인 테이블 위에 얼음을 넣은 진한 콜드브루 커피 한 잔이 놓여 있는 모습
원두의 로스팅 후 디개싱 상태에 따라 추출 과정과 향미 표현이 달라질 수 있다 사진: Unsplash 의 Ben Kolde

 

1. 로스팅 후 원두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생두를 로스팅하면 단순히 수분만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높은 온도에서 마이야르 반응, 열분해를 비롯한 다양한 화학반응이 진행되면서 향미 성분과 함께 상당량의 가스가 만들어집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이산화탄소(CO₂)입니다.

 

문제는 로스팅이 끝났다고 해서 이 CO₂가 모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로스팅 과정에서 만들어진 다공성 구조 내부에 상당량이 남아 있다가 이후 천천히 밖으로 이동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커피 원두의 디개싱입니다.

그래서 로스팅 직후부터 원두의 상태는 계속 변합니다. 로스팅 후 하루가 지난 원두와 일주일 지난 원두는 단순히 '신선도'만 다른 것이 아니라 내부에 남아 있는 가스의 양과 방출 속도도 다릅니다.

 

2. 디개싱은 왜 일어날까?

 

디개싱을 이해하려면 원두를 단단한 덩어리로 생각하기보다 미세한 기공이 매우 많은 구조로 보는 편이 좋습니다.

로스팅 과정에서 원두가 팽창하고 내부 구조가 변화하면서 기공이 발달합니다. 이 공간에 남아 있던 CO₂는 로스팅이 끝난 뒤 농도와 압력 차이에 의해 서서히 외부로 이동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모든 커피의 디개싱 속도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 로스팅 프로파일
  • 배전도
  • 원두 내부의 미세 구조
  • 보관 온도와 환경
  • 홀빈인지 분쇄된 상태인지
  • 분쇄 입자 크기

등에 따라 가스 방출 속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 디개싱 날짜를 하나의 숫자로 정하기 어려운 이유

'로스팅 후 며칠이 지나야 콜드브루를 만들 수 있다'는 식의 절대적인 기준을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원두와 로스팅 조건에 따라 CO₂의 잔존량과 방출 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3. CO₂가 콜드브루 추출에 미치는 영향

 

그렇다면 갓 볶은 원두 내부의 CO₂가 왜 추출과 관계가 있을까요?

커피 추출에서는 물이 분쇄된 커피 입자와 접촉하고 내부로 침투하면서 여러 수용성 성분이 물로 이동합니다. 콜드브루 역시 기본 원리는 같습니다.

 

다만 콜드브루는 뜨거운 물 대신 낮은 온도의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추출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고, 시간·온도·분쇄도·교반 같은 조건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로스팅 직후의 원두를 분쇄해 물과 만나게 하면 입자 내부에 남아 있던 CO₂도 동시에 빠져나옵니다.

 

따라서 추출 초기에는 단순히 '물이 커피 성분을 녹이는 과정'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물의 침투와 CO₂의 방출이 동시에 진행되는 복합적인 상태로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특히 침지식 콜드브루에서는 처음 물을 부었을 때 커피층이 부풀거나 일부 분쇄 입자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현상에는 분쇄 입자 내부와 주변에서 빠져나오는 가스가 관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CO₂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콜드브루가 반드시 '과소추출된다'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콜드브루 추출은 여러 변수가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물의 온도와 추출 시간은 물론 분쇄도, 교반, 커피와 물의 비율까지 결과에 영향을 줍니다.

 

4. 분쇄하면 디개싱은 훨씬 빨라진다

 

콜드브루에서 특히 주목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홀빈 상태에서는 CO₂가 원두 내부의 복잡한 구조를 통과해 밖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하지만 원두를 분쇄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표면적이 크게 증가하고 CO₂가 외부로 빠져나가야 하는 거리가 짧아집니다.

 

Wang과 Lim의 연구에서는 원두를 굵은 입자에서 미세한 입자로 분쇄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비율의 CO₂가 손실됐으며, 분쇄 커피의 디개싱 속도 역시 홀빈보다 빠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로스팅 직후 원두'라는 조건만 봐서는 부족합니다.

언제 분쇄했는가, 얼마나 굵게 분쇄했는가, 분쇄 후 얼마 만에 물을 부었는가까지 생각해야 실제 추출 상태를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조건 CO₂ 방출 관점 콜드브루에서 고려할 점
로스팅 직후 홀빈 잔존 CO₂가 많은 시기 분쇄 순간 가스 방출이 크게 증가할 수 있음
로스팅 후 며칠 경과 디개싱이 계속 진행된 상태 초기 추출 조건이 상대적으로 안정될 가능성
굵은 분쇄 미분보다 표면적이 작음 콜드브루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방식
미세 분쇄 CO₂가 빠르게 방출되기 쉬움 추출 속도 역시 빨라지므로 별도 조정 필요
5. 로스팅 직후 콜드브루가 무조건 나쁠까?

 

디개싱이 충분하지 않으면 추출 변수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갓 볶은 원두로 만든 콜드브루가 반드시 맛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핵심은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보다 원하는 향미를 얼마나 반복해서 만들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콜드브루는 에스프레소처럼 수십 초 만에 끝나는 추출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장시간 물과 접촉하며, 연구에서도 온도와 교반 조건에 따라 추출 속도가 크게 달라지는 것으로 보고됩니다.

 

따라서 추출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커피 입자에서 가스가 빠져나오고 물의 침투와 용해가 계속됩니다.

이 때문에 핸드드립에서 사용하는 '로스팅 후 며칠'이라는 기준을 콜드브루에 그대로 대입하기보다는 콜드브루 자체의 추출 조건에서 테스트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콜드브루 추출 원리 더 알아보기 → 콜드브루 1시간 만에? 진공 추출 실험하고 실패한 이유
6. 실전에서는 어떻게 비교해야 할까?

 

이 문제를 제대로 확인하려면 원두만 바꿔가며 감으로 비교하기보다 간단한 실험을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동일한 배치의 원두를 사용해 로스팅 후 경과 시간만 다르게 설정합니다.

 

테스트 로스팅 후 경과 나머지 조건
A 당일 동일하게 유지
B 1~2일 동일하게 유지
C 3~5일 동일하게 유지
D 7일 전후 동일하게 유지

여기서 원두량, 물의 양, 물 온도, 분쇄도, 추출 시간, 교반 횟수, 필터 조건을 최대한 동일하게 맞춥니다.

그리고 완성된 콜드브루의 향의 강도, 단맛, 산미, 쓴맛, 후미, 질감을 비교합니다. 측정 장비가 있다면 TDS까지 기록하면 훨씬 흥미로운 데이터가 됩니다.

가능하다면 같은 날 한꺼번에 시음해 온도 조건도 맞추는 것이 좋습니다.

 

✔ 제가 권하는 테스트 포인트

단순히 '며칠 숙성한 원두가 맛있다'를 찾기보다 로스팅 후 경과 시간에 따라 동일한 콜드브루 레시피의 맛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확인하는 방식이 좋습니다.

특히 로스팅 프로파일이 바뀌면 같은 날짜 기준이 그대로 적용되는지도 함께 비교해 보면 디개싱과 추출의 관계를 훨씬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테스트하면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최적의 디개싱 기간이 모든 원두에서 동일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전도와 로스팅 프로파일이 달라지면 원두의 물리적 구조와 CO₂ 방출 특성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결국 매장에서 사용하는 콜드브루 레시피라면 '로스팅 날짜' 자체도 하나의 추출 변수로 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7. 디개싱과 콜드브루의 핵심 정리

 

로스팅 직후 원두로 콜드브루를 만들어도 됩니다. 다만 갓 볶은 원두는 CO₂가 활발하게 빠져나오는 상태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접근해야 합니다.

 

특히 원두를 분쇄하면 가스 방출은 훨씬 빨라집니다. 그 상태에서 물을 넣으면 CO₂ 방출과 물의 침투, 커피 성분의 용해가 동시에 진행됩니다.

 

그렇다고 CO₂ 하나만으로 콜드브루의 맛을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저온 추출에서는 온도, 시간, 분쇄도, 교반, 물과 커피의 비율 등 여러 변수가 함께 작용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 문제를 본다면 '콜드브루는 로스팅 후 반드시 며칠 기다려야 한다'는 식의 고정된 숫자를 먼저 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같은 원두와 같은 로스팅 배치에서 디개싱 기간만 달리 한 뒤 동일한 레시피로 비교하는 것이 훨씬 정확한 접근입니다.

 

결국 좋은 콜드브루 레시피는 원두 몇 g, 물 몇 g, 몇 시간이라는 숫자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로스팅 후 원두가 어떤 상태에 있을 때 추출을 시작했는가까지 관리하면 한 단계 더 높은 재현성을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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