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브루를 7시간, 24시간씩 추출하지 않고 훨씬 짧은 시간에 만들 수는 없을까요?
콜드브루 기계를 개발하고 여러 추출 방식을 실험하면서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궁금증이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시도해 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진공을 이용한 콜드브루 추출'이었습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속도는 확실히 빨랐지만 결국 상품화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오늘은 그 실험 과정과 실패한 이유를 있는 그대로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 항목 | 조건 |
|---|---|
| 커피 : 물 비율 | 100g : 700g (1:7) |
| 분쇄도 | 곱게 |
| 물 온도 | 10℃ |
| 진공 사이클 | 약 10초 유지 → 해제, 10회 반복 |
| 추가 침지 | 사이클 종료 후 약 1시간 유지 |
| 최종 TDS | 4.5% (희석용 원액 기준) |
| 최종 여과 | 거름망 사용 |
여기서 TDS 4.5%는 바로 마시는 콜드브루 농도가 아니라, 물을 섞어 마시는 '콜드브루 원액' 기준입니다. 국내에서는 콜드브루를 희석 원액 형태로도 많이 판매하기 때문에, 1:7 비율이나 TDS 4.5% 자체를 실패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진짜 주목해야 할 건 다른 부분에 있었습니다.
분쇄한 커피 입자 내부에는 미세한 공간이 많고, 그 안에 공기와 이산화탄소 같은 기체가 들어 있습니다. 커피를 물에 담근 상태에서 압력을 낮추면 입자 내부 기체가 빠져나오는 데 영향을 줄 수 있고, 이후 진공을 해제해 다시 대기압으로 돌아오면 물이 커피 조직 내부로 침투하는 과정이 촉진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진공 → 기체 배출 → 해제 → 물 침투'가 반복되는 흐름입니다.
이 원리는 식품공학에서 말하는 vacuum impregnation 현상과 연결해서 볼 수 있는데요, 실제로 진공을 이용한 콜드브루 관련 연구에서도 감압 조건과 사이클을 이용하면 기존 침지식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성분을 추출할 가능성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 그러니 10℃의 찬물로도 약 1시간 만에 TDS 4.5% 원액을 얻은 결과 자체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TDS(Total Dissolved Solids)는 커피 안의 용해 고형분 농도를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하지만 TDS가 높다고 무조건 맛있는 커피가 되는 건 아니었어요. 제가 원했던 건 희석했을 때 향이 깨끗하고, 단맛과 바디감이 있으면서 뒷맛이 깔끔한 콜드브루였습니다.
그런데 실험 결과는 생각과 달랐습니다. 농도는 충분했지만 커피가 지나치게 오일리했고, 희석해서 마셔도 제가 원하는 깔끔한 느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특히 입안에 남는 텁텁한 후미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많이 추출했는가'에서는 성공했지만, '어떤 상태의 추출액을 만들었는가'에서는 만족스럽지 않았던 거죠. 관련 진공 콜드브루 연구에서도 진공 사이클 수를 늘리면 TDS 등 추출 지표는 증가할 수 있지만, 물리화학적 추출량이 가장 높은 조건과 관능적으로 가장 선호되는 조건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결과가 있는데, 제 실험이 정확히 그 사례였습니다.
- ① 너무 고운 분쇄 — 분쇄도가 고울수록 표면적이 늘고 추출이 빨라지는데, 여기에 진공·대기압 반복까지 더해 이미 빠른 상태를 한 번 더 촉진한 셈이었습니다. 특히 미분이 최종 음료에 남으면 농도뿐 아니라 탁도와 질감, 텁텁함에까지 영향을 줍니다.
- ② 진공·해제 10회 반복 — 한 번에 10초씩 10회를 합쳐도 100초라 노출 시간 자체가 길다고 보긴 어렵지만, 반복 횟수만큼 입자 내부·외부의 물질 이동이 계속 촉진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관련 연구에서도 사이클 횟수에 따라 TDS·카페인·페놀성 물질 등 추출 특성이 달라지는 결과가 확인됩니다.
- ③ 진공 후 추가로 1시간 더 침지 — 이미 고운 분쇄와 10회 사이클을 거친 상태에서 다시 1시간을 접촉시켰으니, 일반 침지식 콜드브루의 1시간과는 조건 자체가 다릅니다.
마지막 여과에 거름망을 썼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이게 꽤 중요한 변수였습니다. 커피의 지질 성분은 물에 잘 녹지 않아서 추출액에서는 미세한 오일 방울이나 에멀전, 콜로이드 형태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거친 망은 큰 입자는 걸러내도 미분이나 미세 콜로이드성·지질성 물질까지는 충분히 걸러내기 어렵습니다.
커피 여과 관련 연구에서도 종이필터와 금속필터의 지질 통과 특성이 크게 다르게 나타난 사례가 있는데, 이게 제가 느꼈던 '오일리함'을 이해하는 단서가 되었습니다. 당시엔 텁텁함을 단순히 과추출 맛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봅니다. 고운 분쇄로 생긴 미분, 빠른 추출, 추가 침지, 오일과 콜로이드, 거름망을 통과한 미세 입자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쓴맛·떫은맛 같은 화학적 요인만이 아니라, 미세 입자와 오일이 만든 물리적인 mouthfeel 문제였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 구분 | 진공 추출 | 투과식 추출 |
|---|---|---|
| 추출 시간 | 약 1시간으로 매우 짧음 | 상대적으로 길게 소요 |
| TDS(농도) | 4.5%로 충분히 확보 | 기존에도 안정적으로 확보 |
| 향미·질감 | 오일리하고 텁텁한 후미 | 향미가 선명하고 후미가 깔끔 |
| 최종 판단 | 상품화 보류 | 기존 방식 유지 |
TDS와 추출시간만 놓고 보면 진공추출이 분명 매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관능평가를 진행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기존에 써온 투과식 콜드브루와 비교했을 때 진공추출 커피는 상대적으로 오일리하고 텁텁한 느낌이 강했고, 투과식은 향미가 더 선명하고 마신 뒤의 후미가 깔끔했습니다. 결국 전체적인 밸런스에서는 투과식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았고, 그래서 진공추출 방식은 상품화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기계를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추출시간을 크게 줄이는 기술이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추출시간이 짧아지면 설비 회전율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산성이 좋아져도 맛을 희생한다면 좋은 콜드브루 추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콜드브루는 얼마나 빨리 추출하느냐보다 어떤 맛으로 추출하느냐가 더 중요하니까요.
- 커피 : 물 비율은 1:7 그대로 유지
- 분쇄도는 곱게 대신 굵게 변경
- 진공 사이클 횟수 줄이기
- 진공 처리 직후 바로 여과하는 조건부터 비교 (1시간 대기 없이)
- 거름망 대신 미세 여과·종이 여과 방식 비교
목표도 조금 다르게 잡을 생각입니다. 예전엔 "빠른 시간 안에 충분한 TDS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번엔 "TDS 4.0~4.5% 농도는 유지하면서 오일리함과 텁텁함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를 확인해보려 합니다. 이렇게 하면 어느 단계에서 오일리함과 텁텁함이 만들어졌는지 좀 더 명확히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실패한 실험이라고 생각했는데, 관련 연구자료와 당시 데이터를 다시 비교해보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제가 실패한 건 '진공으로 콜드브루를 빠르게 추출하는 것' 자체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추출 자체는 생각보다 잘 됐습니다. 문제는 너무 고운 분쇄, 반복적인 압력 변화, 추가 침지, 마지막 여과까지 전체 공정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최적화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커피 추출에서 중요한 건 단순히 많이 뽑아내는 게 아니라, 원하는 성분은 충분히 얻으면서 원하지 않는 맛과 질감은 최대한 줄이는 것이라고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진공추출 실험은 상품화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이후 콜드브루 기계를 개발할 때 추출속도보다 관능 품질을 우선한다는 기준을 세우게 해 준 값진 실험이었습니다. 예전에 포기했던 1시간 대량 추출 콜드브루가 언젠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살아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위 비교는 모든 조건에서의 절대적인 결론이 아니라, 제가 사용한 원두·분쇄도·온도·진공조건·여과방식과 투과식 공정을 직접 비교한 결과임을 참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