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스페셜티 커피라고 부르는 커피의 중심에는 오랫동안 아라비카(Coffea arabica)가 있었습니다. 향미가 섬세하고 품종과 산지에 따라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주기 때문에 로스터와 소비자 모두에게 가장 익숙한 커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기후변화라는 변수가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고 있습니다.
기온이 올라가고 강수 패턴이 불규칙해지면서 지금까지 좋은 아라비카를 생산하던 지역의 재배 환경 자체가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동안 세계 커피 시장의 주변부에 머물렀던 리베리카(Coffea liberica)가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리베리카가 '더위에 강한 커피'라는 정도가 아닙니다. 최근 연구를 보면 아라비카와 리베리카가 살아가는 기후 범위 자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리베리카가 미래에 아라비카를 완전히 대체한다고 단정할 근거는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리베리카는 아라비카보다 훨씬 높은 평균기온의 환경에서 자라고, 고온에 대한 기후적 적응 범위도 넓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기온 상승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커피 산업의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중요한 대안종으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아라비카는 원래 열대지역에서 자라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더운 환경을 좋아하는 식물은 아닙니다. 오히려 비교적 서늘한 열대 고지대의 기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지구 평균기온이 상승하면서 기존 아라비카 산지의 기후 적합성이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2015년 PLOS ONE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21개의 글로벌 기후모델을 이용해 2050년대 아라비카 재배 적합성 변화를 분석했습니다. 연구 결과는 저지대를 중심으로 아라비카 재배에 적합한 기후가 감소하고, 적합 지역이 더 높은 고도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여줬습니다.
즉 농부 입장에서는 같은 농장에서 같은 품종을 계속 재배한다고 해서 과거와 같은 생산성과 품질이 보장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리베리카의 특징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2026년 학술지 Plants, People, Planet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재배 리베리카와 야생 리베리카의 기후 조건을 분석하고 아라비카와 비교했습니다.
연구에서 나타난 리베리카 재배지의 연평균 기온은 약 24.7℃였고, 비교 대상 아라비카는 약 19.1℃였습니다.
차이는 약 5.6℃입니다.
가장 더운 달의 온도에서도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연구에서 리베리카는 약 32.2℃, 아라비카는 약 27.1℃의 평균값을 보여 약 5.1℃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 비교 항목 | 아라비카 | 리베리카 | 차이 |
|---|---|---|---|
| 연평균 기온 | 약 19.1℃ | 약 24.7℃ | 리베리카 +5.6℃ |
| 가장 더운 달 관련 온도 지표 | 약 27.1℃ | 약 32.2℃ | 리베리카 +5.1℃ |
| 기후적 특징 | 상대적으로 서늘한 환경 | 더 높은 온도의 환경 | 고온 적응 범위 차이 |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이 숫자를 '리베리카의 최적 재배온도는 24.7℃'라고 단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이 값은 연구에서 분석한 기후 니치의 평균적인 특성을 비교한 수치입니다. 품종과 지역, 강수량, 토양, 일사량, 재배 방식 등에 따라 실제 생육 반응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커피를 재배하는 입장에서 이 차이는 꽤 큰 의미를 갖습니다.
기온이 상승하면 아라비카는 단순히 '조금 더 더운 곳에서 자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생육과 개화, 체리 발달뿐 아니라 병해충과 수분 스트레스, 최종적인 컵 품질까지 함께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후 적합성이 높은 고도로 이동할 수도 있지만 모든 생산지에 더 높은 산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높은 곳으로 이동할수록 토지 이용과 산림 보전 문제도 함께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면 리베리카는 원래부터 아라비카보다 훨씬 따뜻한 환경에서 발견되고 재배되어 왔습니다.
기후변화 시대에는 단순히 현재 생산량이 많은 커피보다 앞으로 더워진 환경에서 어느 정도의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가 점점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리베리카가 가진 높은 온도에 대한 적응성이 커피 육종과 재배 연구에서 가치 있는 자원이 됩니다.
기후변화는 단순히 기온만 올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생산 현장에서는 비가 내려야 할 시기에 내리지 않거나 반대로 짧은 기간에 강한 비가 집중되는 현상이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최근 연구에서 야생 리베리카는 강한 우기와 뚜렷한 건기를 경험하는 기후 특성을 보여주며, 이런 특성 때문에 기후변화 대응 자원으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다만 '리베리카는 무조건 가뭄에 강하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직 이릅니다.
2025년 발표된 유전체와 기후 자료 연구에서도 리베리카와 근연종의 가뭄 적응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정확한 내건성 비교를 위해서는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유전자형을 이용한 포장시험이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즉 고온 적응성에 대한 근거는 상당히 뚜렷하지만, 가뭄 저항성까지 모든 리베리카에 동일하게 적용하기에는 추가 연구가 필요합니다.
아라비카에는 기후 외에 또 하나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유전적 다양성이 매우 좁다는 점입니다.
World Coffee Research는 아라비카 유전자원을 분석한 결과 아라비카 자체의 유전적 다양성이 매우 낮고, 실제 상업적으로 널리 재배되는 품종은 그보다도 유전적 기반이 좁다고 설명합니다.
유전적 다양성이 부족하면 새로운 질병이나 고온, 가뭄 같은 환경 스트레스가 등장했을 때 활용할 수 있는 유전적 선택지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 커피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아라비카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라비카 내부의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다른 Coffea 종이 가진 유용한 형질까지 활용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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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렇게 기후 적응성이 좋다면 왜 전 세계 커피 농장이 리베리카를 심지 않는 것일까?'
기후 적응성과 상업적인 성공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리베리카는 나무가 크고 생육 특성이 기존 아라비카와 다릅니다. 열매와 과육, 파치먼트의 구조도 달라 수확과 가공 효율을 높이기 위한 품종 개량과 재배 기술 개발이 더 필요합니다.
2026년 리베리카 기후 연구 역시 리베리카를 주류 작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수량, 과실 구조, 가공 효율 등 여러 농업적 특성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소비자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맛입니다.
아라비카 중심으로 발전한 스페셜티 커피 시장에서 단순히 잘 자란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종이 시장을 대체하기는 어렵습니다. 생산성이 높아도 소비자가 원하는 향미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경제적인 작물이 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결국 앞으로 리베리카 연구에서 재배 적응성 못지않게 중요한 분야가 품종 선발, 가공, 로스팅 그리고 관능 품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후변화가 계속되면 아라비카가 사라지고 리베리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까요?
현재 연구만으로 그렇게 결론 내리는 것은 지나칩니다.
아라비카에서도 내열성과 내병성을 높이기 위한 육종이 진행되고 있고, 재배 고도 이동, 차광재배, 관개, 토양 관리 같은 방법으로 기후변화에 적응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리베리카 역시 모든 기후변화에 무적인 커피가 아닙니다. 2026년 연구에서는 일부 주요 리베리카 생산지역조차 미래의 기온과 강수 변화에 취약해질 가능성을 지적했습니다.
아라비카와 로부스타 두 종에 지나치게 의존해 온 세계 커피 산업이 리베리카를 비롯한 더 다양한 Coffea 유전자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리베리카는 아라비카를 당장 대체할 커피라기보다, 기후변화 시대에 커피 산업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를 하나 더 늘려주는 종에 가깝습니다.
커피를 오랫동안 다루다 보면 산지와 품종, 가공, 로스팅을 서로 분리해서 보기 어렵습니다. 결국 생두의 품질은 나무가 어떤 환경에서 열매를 만들었는지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기온이 계속 상승한다면 우리가 로스터리에서 만나는 생두의 종류도 지금과 달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리베리카의 재등장은 단순히 '특이한 커피 한 종류가 유행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떤 커피나무가 앞으로의 기후에서 살아남고, 동시에 우리가 원하는 품질의 커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라는 훨씬 큰 변화의 시작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커피 산업이 아라비카의 향미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면, 기후변화 시대에는 향미뿐 아니라 내열성·생산성·환경 적응성·유전적 다양성까지 함께 평가하는 시대가 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Climate requirements for cultivated Liberica coffee (Coffea liberica) and consequences for its use and development as a crop species.
Plants, People, Planet.
2. Davis, A. P. et al. (2022)
The re-emergence of Liberica coffee as a major crop plant.
Nature Plants 8, 1322–1328.
3. Davis, A. P. et al. (2025)
Genomic data define species delimitation in Liberica coffee with implications for crop development and conservation.
Nature Plants.
4. Ovalle-Rivera, O. et al. (2015)
Projected Shifts in Coffea arabica Suitability among Major Global Producing Regions Due to Climate Change.
PLOS ONE 10(4): e0124155.
5. World Coffee Research
Coffea Arabica Genetic Diversity 연구 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