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리오 스위치를 사두고 막연하게 써왔던 분들이라면 이 글이 반가울 겁니다. 저도 한동안 스위치를 그냥 뜸 들일 때 잠그는 도구 정도로만 쓰고 있었는데, 추출 원리를 거꾸로 뒤집은 방법을 알게 된 뒤로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같은 원두, 같은 장비인데 맛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솔직히 놀라웠습니다.
기존 방식과 완전히 반대였던 추출 원리
일반적으로 하리오 스위치를 사용하면 초반에 스위치를 닫아 침출(Immersion) 방식으로 뜸을 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침출식이란 커피 가루를 물에 담가두어 성분을 우려내는 방식으로, 프렌치프레스나 에어로프레스와 원리가 같습니다. 물이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고 가루와 접촉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게 핵심입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써보니 이 방식이 항상 좋은 결과를 주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산미가 강한 원두에서 마지막 한 모금이 유독 텁텁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원인을 잘 몰랐습니다.
이번에 알게 된 방법은 그 순서를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초반에는 스위치를 열어 투과식(Percolation)으로 추출합니다. 투과식이란 물이 커피 층을 통과하며 아래로 빠져나가는 방식으로, 일반 핸드드립 V60과 같은 원리입니다. 커피의 좋은 성분은 추출 초반에 가장 빠르게 녹아 나오기 때문에, 이 구간을 고온(93도 이상)에서 투과식으로 진행해 향미를 확실하게 끌어냅니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전략이 달라집니다. 스위치를 닫아 침출식으로 전환하면서 동시에 물 온도를 70~75도로 약 20도 가까이 낮춥니다. 추출 후반으로 갈수록 떫고 쓴 부정적인 성분, 즉 오버 익스트랙션(Over Extraction) 구간에서 나오는 잡미가 우러나오기 쉬운데, 낮은 온도와 완만한 침출 방식의 조합으로 그 성분이 컵에 들어오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겁니다. 오버 익스트랙션이란 커피에서 필요한 성분보다 더 많은 것을 뽑아내어 쓴맛과 떫은맛이 과하게 나오는 상태를 말합니다.
추출 타임라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0:00 ~ 0:30 | 스위치 열림, 93도 이상 물 60g 주입
- 0:30 ~ 1:15 | 스위치 열림 유지, 93도 이상 물 60g 추가 주입 (누적 120g)
- 1:15 ~ 1:45 | 스위치 닫음, 70~75도 물 160g 주입 (누적 280g)
- 1:45 ~ | 스위치 열어 낙하, 전체 3분 내외 완료
원두는 20g, 총 물의 양은 280g으로 커피 대 물 비율(Brew Ratio)은 약 1:14입니다. 브루 레이쇼란 원두 무게 대비 물의 양을 나타내는 비율로, 이 수치가 낮을수록 진하고 높을수록 연해집니다. 분쇄도는 일반 드립보다 살짝 가늘게 잡는 것이 포인트인데, 너무 곱게 갈면 3분이 지나도 물이 빠지지 않을 수 있으니 처음에는 조금씩 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직접 써보고 확인한 것들
제가 처음 이 방법을 시도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후반에 찬물을 섞는 게 정말 맞나?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추출 온도를 낮추면 맛이 덜 뽑힌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실제로 써보니 그건 초반 추출에 해당하는 이야기였습니다. 후반은 오히려 온도를 낮춰야 클린컵(Clean Cup)이 살아납니다. 클린컵이란 잡미나 결점 없이 커피 본연의 향미가 깔끔하게 표현된 상태를 뜻하며, 스페셜티 커피 평가에서 중요한 항목 중 하나입니다(출처: Specialty Coffee Association).
평소에 자주 마시던 원두를 그대로 사용했는데, 단맛이 확실히 달랐습니다. 혀 끝에서 느껴지는 단맛이라기보다 목으로 넘긴 다음에도 남는 여운이 길어진 느낌이었습니다. 마우스필(Mouthfeel), 즉 입 안에서 느껴지는 질감과 무게감도 이전보다 부드러워졌는데, 이건 침출 구간에서 커피 오일 성분이 필터를 통해 조금 더 균일하게 녹아드는 영향으로 보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하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첫 시도에서는 분쇄도를 너무 가늘게 잡아서 3분 30초가 넘어도 물이 절반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는 드리퍼를 과감하게 치우고 서버에 담긴 커피 농도를 확인한 뒤 뜨거운 물을 조금 더해 희석(가수)해서 마시면 충분히 맛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 상태에서 살짝 가수 했더니 에스프레소 베이스 음료처럼 묵직하고 달콤한 맛이 나서 그것도 꽤 좋았습니다.
일반적으로 핸드드립은 물줄기 컨트롤이 중요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방법은 그 부담이 거의 없습니다. 커피 추출의 재현성(Repeatability), 즉 매번 동일한 조건에서 같은 맛을 뽑아내는 능력을 높여주는 것이 이 레시피의 가장 큰 강점입니다. 재현성이 높다는 것은 곧 실패 확률이 낮다는 뜻이고, 이는 홈카페를 즐기는 분들에게 매우 실질적인 이점입니다. 스페셜티 커피 분야의 연구에서도 침출과 투과를 혼합한 하이브리드 추출이 특정 향미 성분을 더 안정적으로 끌어낸다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출처: Coffee Science Foundation).
결과적으로 제 경험상 이 방법은 비싼 원두보다 오히려 평범한 등급의 원두에서 효과가 더 극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원두 자체의 결점보다 추출이 맛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걸 직접 확인한 셈이었습니다.
하리오 스위치가 있다면 한 번은 꼭 시도해 볼 가치가 있는 레시피입니다. 처음에는 온도를 두 단계로 나누는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지만, 케틀에 찬물을 살짝 섞는 것만으로 온도 조절이 되기 때문에 실제로 해보면 생각보다 훨씬 단순합니다. 한 번 맛보고 나면 이전 방식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gC8K40kZ_6E (테츠 카스야 공식 유튜브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