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GSC 비즈니스 커핑 후기 (프로세싱 비교, 희귀 품종, 상품성)

by oz4832 2026. 6. 12.

긴 테이블 중앙에 커핑용 린스컵이 놓여 있고 양쪽으로 커핑 볼이 배열되어 있으며, 참가자들이 커피 향미를 평가하기 위해 커핑을 진행하고 있다
GSC 비즈니스 커핑 현장에서 참가자들이 다양한 산지와 품종의 커피를 평가하며 향미를 비교하는 모습

 

 

점수 높은 커피가 카페에서 잘 팔릴까요? 15년 넘게 커피를 다루면서 매번 느끼는 건 그 답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겁니다. 이번 김해 삼계동 스텝로스터리에서 열린 GSC(Green Specialty Coffee) 비즈니스 커핑은 그 질문을 다시 꺼내게 만든 자리였습니다. 에티오피아 4종, 콜롬비아 8종, 총 12개 샘플을 앞에 두고 로스터와 카페 운영자, 원두 유통업체 관계자들이 함께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같은 밭, 다른 얼굴 — 프로세싱 비교

 

커핑 테이블에서 제가 가장 먼저 집중한 건 1번부터 4번까지였습니다. 에티오피아 부르사(Bursa) 지역에서 생산된 74158 품종의 문타샤 아베 고나(Muntasha Abegona) 네 가지로, 내추럴(Natural), 레드허니(Red Honey), PB 내추럴, 아나에어로빅 내추럴(Anaerobic Natural)로 프로세싱만 다르게 처리한 샘플들이었습니다.

 

프로세싱이란 수확한 커피 체리를 어떻게 건조하고 발효하느냐를 결정하는 가공 방식으로, 같은 품종이라도 어떤 방법을 쓰느냐에 따라 컵에서 전혀 다른 향미를 만들어냅니다. 1번 내추럴은 잘 익은 베리류와 달콤한 과육의 향이 풍부했고, 2번 레드허니는 내추럴에서 한 겹 걷어낸 듯 단맛은 유지하면서도 훨씬 선명한 질감이 느껴졌습니다.

 

3번 PB 내추럴에서 PB란 피베리(Peaberry)를 가리킵니다. 피베리는 커피 체리 안에 씨앗이 두 개가 아닌 한 개만 형성된 경우로, 향미가 더 밀도 있게 농축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컵에서도 같은 밭의 다른 샘플들보다 집중도 있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4번 아나에어로빅 내추럴은 산소를 차단한 밀폐 발효 탱크에서 처리한 방식으로, 발효에서 비롯된 독특하고 복합적인 향미가 가장 강렬하게 표현되었습니다.

네 가지 샘플을 순서대로 넘기면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같은 생산자, 같은 품종, 같은 수확 시즌인데도 컵마다 전혀 다른 커피처럼 느껴졌거든요.

 

콜롬비아 희귀 품종들의 각축전

 

5번부터 12번까지는 최근 스페셜티 시장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주는 라인업이었습니다. 특히 저를 놀라게 한 건 품종의 다양성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한 샘플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5번: [Peñas Blancas] 카투라(Caturra) 워시드
- 6번: [Los Naranjos] 카투라 치로소(Caturra Chiroso) 워시드 EF
- 7번: [Las Flores] 게이샤(Geisha) 워시드
- 8번: [El Diviso] 곰블리곤(Ombligon) 워시드
- 9번: [El Diviso] 버번 시드라(Bourbon Sidra) 워시드
- 10번: [El Diviso] 티피카 메호라도(Typica Mejorado) 워시드
- 11번: [El Diviso] 아히 버번(Aji Bourbon) 아나에어로빅 내추럴
- 12번: [La Planta] 핑크 버번(Pink Bourbon) 워시드 디카프

 

특히 8번 옴블리곤은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세계 바리스타 대회에서 간간이 등장하기 시작한 품종이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편인데, 이번 컵에서는 독특한 질감과 향미 구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9번 버번 시드라는 버번과 시드라의 교배종으로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과일 발효 느낌의 복합미가 두드러졌습니다.

 

EF란 Extended Fermentation의 줄임말로, 발효 시간을 통상보다 길게 가져가는 방식입니다. 6번 카투라 치로소 워시드 EF는 이 방식 덕분에 워시드임에도 불구하고 더 깊은 향미 층이 느껴졌는데, 세계 커피 품질 기관들도 발효 방식에 따른 향미 변화를 점점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출처: SCA(스페셜티커피협회)](https://sca.coffee)

 

비즈니스 커핑에서 점수는 전부가 아니다

 

커핑 평가는 SCA 커핑 프로토콜(Cupping Protocol)을 기반으로 진행됩니다. SCA 커핑 프로토콜이란 스페셜티커피협회가 표준화한 향미 평가 기준으로, Aroma(향기), Flavor(맛), Aftertaste(후미), Acidity(산미), Sweetness(단맛), Body(바디), Balance(밸런스), Overall(종합) 등의 항목을 점수화하는 방식입니다. 총점이 80점 이상이면 스페셜티 등급으로 분류됩니다.

 

그런데 비즈니스 커핑은 조금 다릅니다. 제가 15년 넘게 로스팅을 하면서 배운 건, 커핑 점수와 매장 판매량은 생각보다 상관관계가 낮다는 사실입니다. 화려한 향미를 가진 고가의 희귀 품종이 평가표에서 빛을 발해도 실제 카페 카운터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를 수없이 봐왔습니다.

 

오늘 자리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어떤 분은 11번 이히 버번 아나에어로빅 내추럴의 강렬한 향미에 높은 점수를 주면서도, 이걸 메인 메뉴로 쓰기는 어렵겠다고 바로 덧붙였습니다. 향미의 개성이 강할수록 호불호가 분명해지고, 그러면 재구매로 이어지는 고객 폭이 좁아진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반대로 5번 카투라 워시드처럼 깔끔하고 안정적인 인상을 주는 커피가 실제 매장 운영에는 더 유리하다는 의견도 설득력 있었습니다.

 

국내 스페셜티 커피 시장은 꾸준히 성장 중이지만, 소비자의 실질적인 취향 분포는 여전히 다양합니다. [출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https://www.atfis.or.kr)

 

커핑 테이블이 주는 진짜 공부

 

이번 커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같은 7번 게이샤 워시드를 두고 한쪽에서는 재스민 향이 뚜렷하다고 했고, 다른 쪽에서는 복숭아 같은 여운이 남는다고 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둘 다 틀리지 않았습니다. 커핑 어트리뷰트(Cupping Attribute)란 향미를 구성하는 세부 특성 요소들을 말하는데, 평가자의 경험과 기억에 따라 같은 향미라도 전혀 다른 언어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여러 커핑 세션을 경험해보니 이 차이를 좁혀가는 게 커피 교육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혼자 로스팅실에 있을 때는 결국 자신의 감각 안에 갇히기 쉽습니다. 다양한 업계 사람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서로의 표현을 비교하고 교정하는 과정이 그 어떤 이론 교육보다 빠른 감각 성장으로 이어집니다.

 

GSC가 이런 비즈니스 커핑을 정기적으로 운영하는 이유도 결국 여기 있다고 봅니다. 단순히 좋은 생두를 소개하는 자리가 아니라, 생산자와 로스터와 카페 운영자가 같은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드는 것이니까요.

 

커피 시장이 품종과 가공 방식, 생산자 스토리까지 함께 소비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건 이번 12종 라인업만 봐도 분명히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흐름 속에서도 결국 카페에서 살아남는 커피는 점수가 아니라 고객이 다음 주에 또 찾는 커피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비즈니스 커핑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시장을 읽는 감각을 계속 갈고닦고 싶습니다.


참고: https://www.gsc.coffee/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