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텁텁한 커피의 원인을 분쇄도 하나로만 봤습니다. 굵게 갈면 해결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나중에 분쇄된 가루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문제가 평균 크기가 아니라 미분(Fines), 즉 분쇄 과정에서 함께 만들어지는 아주 작은 입자들에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미분은 단순히 작은 가루가 아니라, 커피층의 물 흐름 전체를 바꾸는 변수입니다.

입도분포가 만드는 불균일한 추출
핸드드립용으로 700~900μm 크기의 입자를 목표로 분쇄하더라도, 그라인더는 그보다 훨씬 작은 입자를 동시에 만들어냅니다. 이게 미분(Fines)입니다. 연구에 따라 기준이 조금씩 다르지만, 2024년 Scientific Reports에 발표된 Smrke, Eiermann & Yeretzian의 연구에서는 100μm 미만을 fines로 정의했습니다(출처: Scientific Reports, Nature). 전형적인 미분 영역은 20~40μm 부근으로, 커피 세포벽이 파쇄되면서 만들어지는 아주 작은 파편들입니다.
문제는 이 작은 입자들이 큰 입자보다 훨씬 빠르게 추출된다는 점입니다. 이걸 설명하는 개념이 확산거리(Diffusion Distance)입니다. 여기서 확산거리란 커피 입자 내부에서 녹은 성분이 표면까지 이동해야 하는 거리를 말합니다. 입자가 작을수록 이 거리가 짧아지고, 물과 접촉하는 상대적 표면적도 넓어집니다. 결과적으로 미분은 드리퍼 안에서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추출됩니다.
같은 커피층 안에 큰 입자, 적정 크기의 입자, 미분이 함께 섞여 있으면 같은 시간 동안 물을 흘려도 각 입자의 추출 진행 정도가 완전히 다릅니다. 전체 추출수율(EY)이 정상 범위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과추출된 미분과 저 추출된 큰 입자가 컵 안에 동시에 담기는 셈입니다. 2025년 Journal of Food Engineering에 발표된 Estévez-Sánchez 등의 연구에서도 커피 추출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평균 입자 크기 하나가 아닌 입도분포(PSD, Particle Size Distribution) 전체를 고려해야 한다고 명확히 밝혔습니다(출처: Journal of Food Engineering, ScienceDirect). 여기서 PSD란 분쇄된 커피 입자들의 크기가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분쇄도를 굵게 조정해도 미분 비율이 높은 상태라면 텁텁한 뒷맛이 사라지지 않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몇 클릭으로 갈았는가'보다 '이 설정에서 어떤 입도분포가 만들어지는가'를 더 중요하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 미분(Fines): 100μm 미만의 아주 작은 커피 입자, 분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
- 확산거리가 짧아 추출 속도가 빠르고, 동일한 추출 시간 내 과추출될 가능성이 높음
- 입도분포(PSD) 전체를 보지 않으면 추출 불균일성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움
- 평균 분쇄도는 동일해도 그라인더에 따라 미분 비율이 달라질 수 있음
투과성을 바꾸는 미분 이동, 그리고 내가 제어하는 방법
미분이 불균일한 추출을 만드는 이유는 빠른 추출 속도 때문만이 아닙니다. 더 결정적인 문제는 미분이 물줄기를 따라 이동한다는 점입니다. 이걸 미분 이동(Fines Migration)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Fines Migration이란 푸어링 과정에서 작은 입자들이 유체의 흐름에 밀려 커피층 아래쪽과 필터 표면 가까이로 이동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Ellero & Navarini의 연구(Journal of Food Engineering, 2019)에서는 미분이 필터 근처에 포획되면서 물 흐름에 대한 저항을 증가시키고 커피층의 투과성(Permeability)을 변화시키는 현상을 모델링했습니다. 투과성이란 쉽게 말해 커피층을 물이 얼마나 쉽게 통과할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물리적 특성입니다. 미분이 필터 기공과 커피 입자 사이의 빈 공간을 채우면 이 투과성이 뚝 떨어지고, 물은 저항이 낮은 특정 경로로만 흐르게 됩니다. 이게 바로 핸드드립에서 흔히 말하는 채널링(Channeling)과 필터 스톨(Stalling)의 원인이 됩니다.
실제로 Smrke 등의 2024년 연구에서는 미분 비율을 인위적으로 높였을 때 커피층 투과성이 감소하고 유속이 느려지며 추출시간이 증가한다는 관계를 실험적으로 확인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 현상은 콘형 드리퍼에서 특히 두드러집니다. 처음 100~150g을 부을 때는 물이 잘 빠지다가, 후반 50~100g 구간에서 갑자기 드로다운이 느려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단순히 분쇄도가 가늘어서가 아니라 미분이 아래로 쌓이면서 만들어내는 현상이었습니다.
교반이나 스월이 오히려 이 현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미분이 많은 상태에서 강한 스월을 주면 이미 침전 중인 미분을 다시 띄워 필터 근처로 더 몰아넣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미분이 많다고 판단되는 원두나 그라인더 조합에서는 푸어링 횟수를 줄이고 물줄기도 낮은 위치에서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식으로 조절합니다.
미분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분쇄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분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일정량의 작은 입자는 커피의 농도와 질감을 만드는 데 기여합니다. 핵심은 미분을 0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도하지 않은 수준으로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필터용 그라인더를 고를 때 저는 플랫 버냐 코니컬 버냐 보다, 해당 버가 실제로 어떤 입도분포를 만드는지를 더 중요하게 봅니다.
미분 제어를 위해 제가 실제로 조정하는 것들
제가 드로다운이 후반에 갑자기 느려지거나 텁텁한 뒷맛이 계속될 때 점검하는 순서는 이렇습니다. 분쇄도를 한두 단계씩 조금씩 굵게 조정하면서, 동시에 푸어링 횟수도 5~6회에서 2~3회로 줄여봅니다. 교반이나 스월은 최소화하고, 물줄기는 낮고 안정적으로 유지합니다. 그리고 추출이 끝난 뒤 커피층의 상태를 관찰합니다. 층이 평평하게 앉았는지, 아니면 가장자리가 높고 중앙이 움푹 파였는지가 미분 이동의 흔적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라인더를 비교할 때는 동일한 원두를 미분 제거 전후로 나눠 같은 레시피로 추출해보는 방법도 유용합니다. 미분을 일부 제거한 커피에서 드로다운은 빨라지고 향미가 더 선명해졌다면, 기존 추출에서 미분과 투과성 문제가 컵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판단 근거가 됩니다. 물론 매번 미분을 체질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지만, 그라인더 성능을 파악하는 실험으로는 꽤 명확한 결과를 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핸드드립 미분이 많으면 왜 텁텁한 맛이 나나요?
A. 미분 자체가 텁텁한 맛을 내기도 하지만, 더 큰 원인은 미분이 커피층의 물 흐름을 바꿔 추출 불균일성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일부 구간은 과추출되고 일부는 저추출되면서 건조감, 떫은 느낌, 둔한 후미가 동시에 나타납니다. 이 문제를 단순한 과다추출로만 보면 해결책도 정확하지 않게 됩니다.
Q. 분쇄도를 굵게 하면 미분 문제가 해결되나요?
A. 부분적으로만 맞습니다. 분쇄도를 굵게 조정하면 평균 입자 크기는 커지지만, 그라인더 자체가 미분을 많이 만드는 구조라면 굵게 갈아도 미분 비율이 크게 줄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은 그라인더가 실제로 어떤 입도분포를 만드는지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Q. 드로다운이 후반에만 갑자기 느려지는 이유가 뭔가요?
A. 미분 이동(Fines Migration) 가능성이 높습니다. 추출 초반에는 미분이 커피층 전체에 분산되어 있다가, 물이 지속적으로 흐르면서 필터 쪽으로 쌓이게 됩니다. 이 미분이 필터 기공을 막으면 후반 드로다운이 급격히 느려집니다. 이 경우엔 분쇄도 조정과 함께 푸어링 횟수와 교반 강도를 줄여보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Q. 미분을 체로 걸러서 쓰면 커피 맛이 좋아지나요?
A. 그라인더 성능을 비교하는 실험에서는 효과적입니다. 미분을 제거한 뒤 추출해보면 드로다운이 빨라지고 향미가 더 선명해지는 경우가 있어서, 기존 추출에서 미분이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미분을 지나치게 제거하면 추출 속도와 농도가 달라지므로 기존 레시피를 다시 조정해야 합니다.
Q. 플랫 버 그라인더와 코니컬 버 그라인더 중 미분이 더 적은 건 어느 쪽인가요?
A. 단순히 버 형태만으로 미분 발생량을 결정짓기는 어렵습니다. 같은 플랫 버라도 제품에 따라 만들어내는 입도분포가 다르고, 코니컬 버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건 특정 분쇄 설정에서 해당 그라인더가 실제로 어떤 PSD를 만드는가입니다. 가능하다면 구매 전 같은 원두로 직접 비교 추출해보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결론
핸드드립에서 미분이 문제가 되는 핵심 이유는 단순히 작은 입자가 많이 추출되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미분이 커피층의 투과성을 낮추고 물 흐름 자체를 바꾸면서 추출의 균일성을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문제를 과다추출이 아니라 추출 불균일성(Extraction Non-uniformity)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봅니다.
좋은 핸드드립은 정해진 레시피를 따라 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물이 내려가는 속도, 후반부의 드로다운 변화, 추출 후 커피층의 상태를 함께 관찰하면서 그날의 원두와 분쇄 상태에 맞게 조절하는 과정입니다. 레시피는 출발점일 뿐이고, 미분을 포함한 입도분포(PSD) 전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는 시각이 핸드드립의 완성도를 결정합니다.
참고: Smrke, Eiermann & Yeretzian, "The role of fines in espresso extraction dynamics", Scientific Reports, 2024 / Estévez-Sánchez et al., "Effect of particle size distribution on mass transfer during solid-fluid extraction", Journal of Food Engineering, 2025 / Ellero & Navarini, "Mesoscopic modelling and simulation of espresso coffee extraction", Journal of Food Engineering, 2019 / Moroney 계열 연구, "Analysing extraction uniformity from porous coffee be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