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타리카는 생산량으로 커피 강국과 경쟁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 대신 스페셜티 커피 시장에서 꾸준히 프리미엄 가격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산지 중 하나입니다. 처음 타라주(Tarrazú) 생두를 손에 쥐었을 때, 묵직한 밀도가 느껴졌습니다. 그 느낌이 컵 안에서도 그대로 이어질 줄은 그때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타라주에서 처음 느낀 것, 단맛이었습니다
생두 로스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나서 여러 산지를 거쳤지만, 코스타리카 타라주를 처음 로스팅했던 날은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컵 테스트를 하는 순간, 오렌지 계열의 산미가 은은하게 올라오더니 뒤이어 브라운슈가 같은 달콤함이 길게 이어졌습니다. 에티오피아처럼 화려하게 꽃향기가 터지거나, 케냐처럼 강렬한 산미가 치고 나오는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손이 갔습니다.
타라주가 코스타리카 최고의 생산지로 꼽히는 이유는 단순히 명성 때문이 아닙니다. 해발 1,200m~1,800m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고,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토양이 커피 체리의 성숙을 돕습니다. 여기서 화산토란 미네랄 함량이 높아 커피 나무가 복합적인 향미를 형성하는 데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토양을 말합니다. 코스타리카 Cup of Excellence 수상 커피 상당수가 이 지역에서 나온다는 사실이 그냥 나온 게 아닌 셈입니다.
제가 직접 로스팅하면서 느낀 또 하나의 특징은 생두의 밀도였습니다. 고지대에서 천천히 성숙한 생두는 밀도가 높아집니다. 밀도가 높은 생두는 로스팅 드럼 안에서 열을 흡수하는 방식이 다르고, 배전 포인트를 조금만 바꿔도 향미 변화가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저는 로스팅 입문자에게 코스타리카 생두를 권하는 편입니다. 열 반응이 안정적이라 실수가 덜하고, 배전 실험을 하기에도 좋은 산지입니다.
코스타리카에는 공식적으로 8개의 커피 생산지역이 있으며, 각 지역의 특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Tarrazú: 강한 단맛, 밝은 산미, 뛰어난 밸런스
- Tres Ríos: 우아한 산미, 깨끗한 후미
- Central Valley: 초콜릿, 견과류 풍미
- West Valley: 과일향, 복합적인 향미
- Orosi: 균형감이 뛰어난 생산지
코스타리카 커피 산업의 품질 관리는 1933년에 설립된 ICAFE(Instituto del Café de Costa Rica)가 담당합니다. ICAFE란 코스타리카 정부 산하에서 커피의 생산, 품질, 연구개발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공공기관을 말합니다. 품질 기준이 이 기관을 통해 관리되기 때문에 산지 간 편차가 비교적 작고, 구매자 입장에서도 신뢰도가 높습니다(출처: ICAFE 공식 사이트).
허니 프로세스, 코스타리카가 세계에 알린 가공법
코스타리카 커피를 이야기할 때 허니 프로세스(Honey Process)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허니 프로세스란 커피 체리의 껍질만 제거하고, 점액질(Mucilage)이라고 불리는 과육 성분 일부를 생두에 남긴 채로 건조하는 가공 방식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워시드(Washed)와 내추럴(Natural) 가공의 중간 방식입니다. 남기는 점액질의 양에 따라 옐로우, 레드, 블랙 허니로 세분됩니다.
제 경험상 허니 프로세스 생두는 워시드에 비해 단맛이 확실히 높고, 내추럴에 비해 잡미가 적습니다. 로스팅 후 컵에서 캐러멜이나 브라운슈가 같은 풍미가 올라오는 것도 이 가공 과정에서 점액질의 당분이 생두에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처음 레드 허니 생두를 다뤘을 때 건조 과정에서 형성된 특유의 향이 꽤 인상적이었고, 컵 테스트 결과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허니 프로세스가 전 세계 스페셜티 로스터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재현성에 있다고 봅니다. 내추럴 가공은 건조 환경에 따라 편차가 크지만, 허니 프로세스는 비교적 균일한 품질을 유지하기 수월합니다. 코스타리카 생산자들이 이 방식을 발전시킨 배경에는 단순히 맛을 넘어서 품질 안정성을 높이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입니다.
에스프레소 블렌드를 구성할 때도 코스타리카 허니 프로세스를 자주 활용합니다. 과도하게 개성이 튀지 않으면서 전체 블렌드의 단맛과 밸런스를 자연스럽게 끌어올려 주기 때문입니다. 브라질이 바디를 담당하고 에티오피아가 향을 담당한다면, 코스타리카는 중간에서 조화를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코스타리카 스페셜티 커피의 전반적인 향미 특성과 가공 방식에 관한 자료는 Coricafé의 보고서에도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출처: Coricafé Costa Rica Coffee Report).
아라비카(Arabica) 품종 중심의 재배 정책도 코스타리카의 품질 수준을 유지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아라비카란 커피 품종 중 향미가 풍부하고 카페인 함량이 낮은 고품질 계열을 말하며, 카투라(Caturra), 카투아이(Catuai), 게이샤(Geisha) 등이 대표 품종입니다. 코스타리카에서는 오랫동안 이 품종들을 중심으로 재배해 왔고, 최근에는 타라주산 게이샤가 국제 경매에서 높은 가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코스타리카 커피를 접할수록 이 산지가 가진 경쟁력이 단순히 테루아(Terroir, 기후와 토양 등 재배 환경 전체를 뜻하는 개념)에서만 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해집니다. 생산자들의 가공 기술에 대한 집중, 국가 차원의 품질 관리 체계, 그리고 그 안에서 꾸준히 이어진 품종 관리가 하나로 맞물려 있습니다.
화려한 커피를 찾고 있다면 코스타리카가 처음에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산지를 오가다 보면 결국 균형감이 얼마나 어려운 덕목인지 알게 됩니다. 코스타리카는 그 균형을 가장 안정적으로 보여주는 산지입니다. 처음 스페셜티 커피에 입문한다면 에티오피아나 케냐로 시작해도 좋지만, 코스타리카 타라주 한 잔을 곁들여 마셔보는 것을 권합니다. 기준이 생깁니다.
참고: https://www.icafe.cr, ICAFE 공식 사이트
https://www.coricafe.com, Coricafé Costa Rica Coffee Rep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