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풍식 로스터로 볶은 커피를 다루다 보면 흥미로운 현상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비슷한 색도와 배전도로 로스팅했는데도 드럼식과 비교하면 볶은 직후 원두의 변화가 빠르고, 추출이 안정되는 시점 역시 상대적으로 앞당겨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저 역시 로스팅과 추출을 반복하면서 이런 차이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열풍식 로스터가 원두에 열을 빠르게 전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관련 연구를 살펴보면 문제는 단순한 열전달 속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핵심은 로스팅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원두 내부의 미세구조와 CO₂가 이동할 수 있는 통로입니다.

열풍식 로스터라고 해서 무조건 디개싱이 빠르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열풍·유동층 방식에서 흔히 사용하는 고온·단시간 로스팅 조건은 원두의 미세구조와 물질전달 특성에 영향을 주고, 같은 로스팅 정도에서도 CO₂ 방출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따라서 핵심은 '열풍'이라는 이름 자체보다 열이 어떤 속도로 전달됐고 원두 조직이 어떻게 형성됐는가에 가깝습니다.
커피를 로스팅하면 생두 내부에서는 마이야르 반응, 열분해 등 복잡한 화학반응이 진행됩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기체가 만들어지며 그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이산화탄소(CO₂)입니다.
문제는 로스팅이 끝난다고 이 CO₂가 모두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상당량은 볶은 원두 내부에 남아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외부로 이동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디개싱입니다.
따라서 디개싱 속도를 이해하려면 'CO₂가 얼마나 생성됐는가'만 볼 것이 아니라 그 가스가 원두 안에서 밖으로 얼마나 쉽게 이동할 수 있는가를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실제로 커피의 CO₂ 방출은 확산을 포함한 복합적인 물질전달 과정으로 설명됩니다. 원두를 분쇄하면 표면적과 이동 경로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홀빈 상태보다 디개싱이 훨씬 빠르게 진행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Wang과 Lim은 유동층식(fluidized bed) 열풍 로스터를 이용해 아라비카 커피를 로스팅하고 로스팅 온도와 시간 조건에 따른 CO₂ 잔존량 및 디개싱 거동을 분석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같은 로스팅 정도에서 고온·단시간으로 볶은 커피의 CO₂ 방출 속도가 저온·장시간 조건보다 유의하게 빨랐다는 결과입니다.
이 결과는 제가 열풍식 로스팅에서 느꼈던 현상을 이해하는 데 꽤 중요한 단서를 줍니다.
열풍식 로스터는 강한 대류 열전달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설계와 운용 방식에 따라 비교적 짧은 시간에 많은 열을 원두로 전달하는 프로파일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최종 색도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색도에 도달하기까지 어떤 시간-온도 경로를 거쳤는가가 디개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열풍식 = 고온·단시간 = 무조건 빠른 디개싱'이라는 공식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같은 열풍식이라도 풍량, 투입량, 열원 출력, 로스팅 시간, 원두의 밀도와 수분, 배전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연구 결과는 로스팅 방식의 명칭보다 실제 시간-온도 조건을 봐야 한다는 근거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생두와 볶은 원두를 물리적으로 비교하면 상당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로스팅 중 수분이 빠져나가고 가스가 생성되면서 내부 압력이 높아지고 원두는 팽창합니다. 세포 구조도 변하고 내부에는 수많은 빈 공간과 미세한 통로가 만들어집니다.
실제로 2024년 Journal of Food Engineering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Micro-CT를 이용해 로스팅 과정의 원두 구조를 분석했으며, 로스팅 과정에서 원두의 다공성이 크게 증가하는 현상을 확인했습니다.
이 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CO₂는 원두라는 단단한 덩어리를 뚫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로스팅 과정에서 만들어진 다공성 구조를 통해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부 기공의 크기와 연결 상태, 세포벽 구조 등이 달라지면 같은 양의 CO₂가 들어 있어도 외부로 빠져나오는 속도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로스터들이 현장에서 자주 경험하는 의문 하나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색도는 비슷한데 왜 숙성 속도는 다르지?"
색도는 로스팅 결과를 판단하는 매우 유용한 지표지만 원두 내부에서 일어난 모든 물리적 변화를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 관찰 요소 | 확인할 수 있는 것 | 디개싱과의 관계 |
|---|---|---|
| 원두 색도 | 전체적인 로스팅 정도 | 잔존 CO₂ 및 배전도 판단에 유용 |
| 로스팅 시간 | 열에 노출된 시간 | 내부 구조 형성에 영향 |
| 온도 프로파일 | 열이 전달된 과정 | 화학반응·조직 변화에 영향 |
| 원두 팽창 | 물리적 구조 변화 | 다공성 및 가스 이동과 관련 |
| 분쇄도 | 가스 이동 거리·표면적 | 분쇄 후 CO₂ 방출 속도에 큰 영향 |
Wang과 Lim의 실험에서도 같은 로스팅 정도에서 로스팅 온도가 높았던 커피가 더 빠른 CO₂ 방출을 보였습니다. 연구진은 이러한 차이를 로스팅 과정에서 형성되는 물리화학적 특성과 미세구조의 차이와 연결해 설명했습니다.
결국 '몇 도까지 볶았는가'보다 '그 지점까지 어떻게 도달했는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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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부분이 연구자료보다 현장에서 더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열풍식 로스터로 여러 프로파일을 테스트하다 보면 비슷한 배전도로 맞춘 원두라도 볶은 직후부터 며칠 동안 향과 추출 상태가 변하는 속도가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특히 열을 빠르게 투입해 비교적 짧게 끝낸 프로파일에서는 초기 변화가 빠르고, 생각했던 것보다 이른 시점에 추출 밸런스가 잡히는 경우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이것을 단순히 '열풍식 원두는 숙성이 빠르다'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열풍이라는 방식 자체가 디개싱을 결정한다기보다, 열풍을 이용해 만들어낸 열전달 조건이 원두 내부 구조를 다르게 만들고 그 결과 CO₂의 이동 속도까지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쪽입니다.
이렇게 보면 같은 열풍식 로스터에서도 프로파일을 바꿨을 때 숙성 시점이 달라지는 현상도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로스팅 후 며칠째인가'만 기준으로 정하기보다 같은 원두를 일정한 간격으로 추출해 봅니다.
향의 열림, 분쇄 직후 가스 반응, 드리퍼에서의 팽창, 추출 속도, 향미의 선명도와 거친 느낌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함께 보면 해당 프로파일에 맞는 사용 시점을 찾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여기서는 조심해야 합니다. 디개싱이 빠르다는 것과 커피 맛이 더 빨리 좋아진다는 것은 완전히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CO₂가 빠져나가는 동안 향기 성분도 변화하고 산소와의 접촉에 따른 산화도 계속 진행됩니다. 반대로 CO₂가 지나치게 많이 남아 있으면 특히 에스프레소나 일부 추출 조건에서 물과 커피의 접촉을 방해하고 추출 변동성을 키울 수 있습니다.
결국 목표는 가스를 최대한 빨리 제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두가 가진 향미를 충분히 유지하면서 추출을 방해할 정도의 과도한 가스가 안정되는 지점을 찾는 것이 더 현실적인 접근입니다.
그래서 저는 열풍식 로스터를 사용할 때도 모든 커피에 동일하게 '로스팅 후 ○일'이라는 기준을 적용하는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 생두의 밀도와 수분
- 최종 배전도와 색도
- 전체 로스팅 시간
- 고온 구간에서의 진행 방식
- 원두의 팽창 정도
- 필터 또는 에스프레소 등 추출 방식
- 보관 온도와 포장 상태
이 조건들이 달라지면 적절한 숙성 시점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열풍식 로스터에서 디개싱이 빠르게 느껴지는 이유를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저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열풍 자체가 CO₂를 빼내는 것이 아니라, 로스팅 과정에서 만들어진 원두의 물리적 구조와 시간-온도 이력이 이후 CO₂가 빠져나오는 속도를 결정한다.
특히 유동층식 열풍 로스터를 이용한 연구에서 같은 로스팅 정도라도 고온·단시간 조건의 커피가 더 빠른 CO₂ 방출을 보였다는 사실은 현장에서 느끼는 차이를 설명하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다만 이것을 모든 열풍식 로스터의 절대적인 특성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됩니다. 로스터의 구조와 풍량, 열원, 배치 크기, 프로파일이 달라지면 원두가 받는 실제 열 이력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가 로스팅하면서 가장 관심 있게 보는 것도 로스터의 이름보다 '이 원두 안에 어떤 구조를 만들었는가'입니다.
같은 색도의 원두라도 향이 열리는 시점과 추출 안정성이 다르다면 그것은 단순한 느낌의 차이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로스팅 프로파일이 만들어낸 내부 구조와 CO₂ 확산 특성의 차이가 실제 컵에서 나타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디개싱을 이해하면 숙성일만 정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내가 만든 로스팅 프로파일을 다시 해석하는 또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1. Wang, X. & Lim, L.-T. (2014). Effect of roasting conditions on carbon dioxide degassing behavior in coffee. Food Research International, 61, 144–151. DOI: 10.1016/j.foodres.2014.01.027
2. Anderson, B.A. et al. (2003). The diffusion kinetics of carbon dioxide in fresh roasted and ground coffee. Journal of Food Engineering, 59, 71–78.
3. Oliveros, N.O. et al. Experimental study of dynamic porosity and its effects on simulation of the coffee beans roasting. Journal of Food Engineering.
4. Al-Shemmeri, M. et al. (2024). Development of coffee bean porosity and thermophysical properties during roasting. Journal of Food Engineering, 378, 112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