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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첼바 내추럴 예가체프 커핑 후기 (생두 분석, 로스팅, 추출)

by oz4832 2026. 8. 19.

한동안 에티오피아 내추럴 생두를 과소평가했습니다. "어차피 딸기 향 나는 거 아냐?"라고 가볍게 여겼다가, 에티오피아 첼바 내추럴 예가체프 G1을 처음 커핑했을 때 제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해발 1,900m 고지대에서 자란 이 생두는 밀도 777g/L, 수분율 12.3%라는 수치가 말해주듯 조직이 단단하고 향미 잠재력이 범상치 않습니다. 수천 번의 로스팅을 거쳐온 제 기준으로도, 이 생두는 다루는 방식에 따라 결과물의 편차가 유독 크게 벌어지는 타입이었습니다.

 

푸른 산과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아프리카 커피 농장의 농부가 수확한 붉은 커피 체리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여러 개의 건조대 사이를 걸어가는 모습
에티오피아 커피 산지에서 수확한 커피 체리를 건조대로 옮기는 농부의 모습

생두분석 

에티오피아 첼바 내추럴 예가체프 G1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제가 가장 먼저 확인한 건 커핑 노트가 아니라 생두의 밀도와 수분율이었습니다. 밀도 777g/L라는 수치는 고지대 생두임을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여기서 생두 밀도란, 단위 부피당 생두의 무게를 의미하는데, 쉽게 말해 밀도가 높을수록 생두 조직이 치밀하고 단단하다는 뜻입니다. 조직이 단단하면 로스팅 열이 내부까지 침투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초반 투입 열량을 충분히 확보해주지 않으면 외부만 익고 속은 덜 익는 언더 로스팅(Under-roasting)이 생깁니다. 실제로 제가 에어로스터기를 직접 제작하면서 수없이 마주쳤던 문제가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수분율 12.3%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수분율이란 생두에 포함된 수분의 비율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드라이 페이즈(Dry Phase), 즉 수분이 빠져나가는 초기 건조 구간에서 충분한 열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드라이 페이즈를 짧게 가져가면 향미 성분이 고르게 개방되지 못하고, 반대로 너무 길게 끌면 원두 표면이 지나치게 건조해져 1차 크랙 이후 전개가 급격해집니다. 제 경험상 이 첼바 G1은 드라이 페이즈에서 열을 천천히, 하지만 충분히 쌓아주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등급 체계도 짚어야 할 부분입니다. 에티오피아의 커피 등급은 에티오피아 커피 차 청(ECTA, Ethiopian Coffee and Tea Authority)이 관장합니다. ECTA는 에티오피아 정부 직속 기관으로, G1부터 G9까지의 등급 규정과 수출 허가를 총괄합니다(출처: Ethiopian Coffee and Tea Authority). G1은 결점두(Defect Bean) 수가 가장 엄격하게 통제된 최상위 등급으로, 이 생두가 커핑 스코어 86점을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 밀도 777g/L — 조직이 치밀한 고지대 생두, 초반 투입 열량 충분히 확보 필수
  • 수분율 12.3% — 드라이 페이즈에서 열 에너지를 충분히 쌓아야 향미 성분이 고르게 개방
  • G1 등급 — ECTA 기준 결점두 최소화, 커핑 스코어 86점의 스페셜티 마이크로롯
  • 토착종(Heirloom) 품종 — 수천 년에 걸쳐 자연 선발된 에티오피아 고유 유전자, 향미 복잡도의 원천
요약: 밀도 777g/L·수분율 12.3%라는 물리적 수치가 이 생두의 로스팅 전략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이며, ECTA G1 등급은 품질의 신뢰도를 뒷받침한다.

 

로스팅포인트 — 1차 크랙 이후 60초의 승부

제가 이 생두를 처음 볶았을 때 저질렀던 실수가 있습니다. 내추럴이니까 향미가 강하겠지 싶어서 미디엄 라이트보다 살짝 밝게 배출했는데, 컵에서 발효취와 풋내가 섞인 어중간한 향미가 올라왔습니다. 내추럴 가공 생두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내추럴 가공(Natural Process)이란, 커피 체리를 수확 후 과육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햇볕에 말리는 방식입니다. 이 과정에서 과육의 당분과 유기산이 생두 표면에 깊이 스며들어, 워시드(Washed) 생두에 비해 당 함량이 현저히 높아집니다.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이란 가열 과정에서 당분과 아미노산이 결합해 복합적인 향미 화합물을 만들어내는 화학반응인데, 쉽게 말해 빵이 구워질 때 고소한 냄새가 나는 원리와 같습니다. 당 함량이 높은 내추럴 생두는 이 마이야르 반응 구간에서 열을 워시드보다 훨씬 빠르게 흡수하기 때문에, 1차 크랙 이후 열량 조절이 더욱 정교해야 합니다.

제가 직접 테스트해보며 정리한 포인트별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1차 크랙 후 40초(Moderately Light) 배출에서는 크랜베리와 살구 계열의 화이트 플로럴이 선명하게 올라왔지만, 내추럴 특유의 발효 뉘앙스가 컵에 상당히 남았습니다. 추출 수율을 맞추기가 까다로웠고, 드립 파라미터를 조금만 틀려도 잡미가 바로 튀어나왔습니다.

반면 1차 크랙 후 1분 15초(Medium)에서 배출했을 때가 가장 안정적이었습니다. 에스테르(Ester) 화합물, 즉 과일과 꽃향기를 만들어내는 향미 성분이 가장 활성화되는 온도 구간을 정확히 통과하면서, 딸기와 장미의 뉘앙스가 메이플 시럽 같은 달콤한 단맛과 균형 있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이 포인트에서는 굳이 추출 기술이 뛰어나지 않아도 컵이 맛있게 나왔습니다. 생두가 이미 최적의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1차 크랙 후 1분 45초(Moderately Dark) 이후로 넘어가면 건포도와 바닐라 계열로 향미가 재편됩니다. 화려한 베리류 향미는 점점 뒤로 밀리고 바디감과 달콤한 쓴맛이 전면으로 나오는데, 이 구간을 원하는 분이라면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생두의 본래 캐릭터를 살리려면 미디엄 포인트에서 멈추는 것이 맞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요약: 내추럴 특유의 높은 당 함량은 마이야르 반응을 빠르게 촉진하므로, 1차 크랙 후 1분 15초(Medium) 배출이 에스테르 향미와 단맛의 균형이 가장 최적화되는 지점이다.

 

추출가이드 — 잔 속에서 향미를 완성하는 법

로스팅을 아무리 잘 해도 추출에서 망가지면 소용이 없습니다. 제가 콜드브루 자동 추출 머신을 직접 개발하면서 가장 절실히 깨달은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생두의 잠재력은 추출 변수에 의해 최종 완성되거나 훼손됩니다.

이 생두를 핸드드립으로 추출할 때, 물 온도는 90~92℃를 권장합니다. 93℃를 넘기면 내추럴 특유의 발효 향이 과도하게 추출되어 컵이 무거워집니다. 제가 직접 92℃와 94℃를 번갈아 테스트해 봤는데, 2℃ 차이가 생각보다 확연하게 나타났습니다. 94℃에서는 딸기 뉘앙스 뒤에 탁한 발효 감이 묻어 나왔고, 92℃에서는 깔끔하게 정리된 과일 산미가 남았습니다.

분쇄도 조정도 중요합니다. 내추럴 생두는 워시드에 비해 조직 구조가 불균일한 편이라 미분(Fine Powder)이 더 발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분이란 분쇄 과정에서 원두가 너무 곱게 갈린 극세 입자를 의미하는데, 이것이 많아지면 추출 시간이 길어지고 과추출로 이어집니다. 평소 드립 분쇄도보다 미세하게 굵게 세팅하거나, 뜸 들이기(Pre-infusion) 시간을 30~40초로 충분히 가져가는 것이 좋습니다. 뜸 들이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면서 물이 고르게 분산되고, 이후 본추출에서 균일한 수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추출비는 1:15~1:16을 기준으로 잡습니다. 원두 20g 기준 추출수 300~320g이 제가 가장 안정적인 결과를 얻은 범위였습니다. 아이스로 마실 계획이라면 강력히 추천합니다. 온도가 내려가면 딸기 잼과 잘 익은 귤의 달콤상큼한 미디엄 바디감이 훨씬 선명하게 살아납니다. 에티오피아 커피 협회(ECA, Ethiopian Coffee Association)는 1969년 설립 이래 예가체프 지역 커피의 이력추적성(Traceability)과 품질 홍보를 지속해 왔는데(출처: Ethiopian Coffee Association), 그 배경이 있기에 이 생두가 마이크로롯 단위로 품질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요약: 물 온도 90~92℃, 뜸들이기 30~40초, 추출비 1:15~1:16이 이 생두의 향미를 가장 깔끔하게 끌어내는 핵심 추출 변수이며, 아이스 추출 시 과일 캐릭터가 더욱 선명해진다.

 

자주 묻는 질문

Q. 에티오피아 내추럴 예가체프, 처음 볶는 사람도 미디엄으로 맞출 수 있나요?

A. 가능하지만 1차 크랙 소리를 정확히 감지하는 것이 전제입니다. 1차 크랙(First Crack)이란 생두 내부 수분이 기화하며 세포벽이 팽창, 터지는 소리로 "팝콥 튀기는 듯한" 팡팡 소리가 납니다. 이 소리가 시작되고 나서 1분 15초를 기준으로 배출하면 되는데, 초보 로스터라면 1분~1분 30초 사이를 목표 구간으로 잡고 테스트 배치를 최소 2~3회 거치는 것이 좋습니다. 각 배치마다 컵 결과를 기록해두면 본인의 로스터기에 맞는 최적 포인트를 빠르게 찾을 수 있습니다.

 

Q. 내추럴 생두는 왜 워시드보다 발효 향이 강한 건가요?

A. 내추럴 가공은 커피 체리를 과육째 건조하는 방식으로, 건조 기간 동안 과육의 당분과 미생물이 생두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이 과정에서 유기산과 알코올성 발효 부산물이 생두 세포 조직 안에 흡수되기 때문에, 워시드보다 과일 향미와 발효 뉘앙스가 진하게 남습니다. 관리가 잘 된 내추럴은 깔끔한 베리류 향미로 나타나지만, 건조 과정이 불균일했던 생두는 과한 발효취나 잡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첼바 G1은 ECTA 최상위 등급 기준을 통과한 마이크로롯이기 때문에 그 편차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Q. 커핑 스코어 86점이면 실제로 얼마나 좋은 건가요?

A. SCA(Specialty Coffee Association) 기준으로 커핑 스코어 80점 이상이 스페셜티 커피로 분류되며, 85점 이상부터는 "우수(Excellent)" 구간에 해당합니다. 86점은 일반 스페셜티와 프리미엄 스페셜티의 경계에 위치한 수치로, 같은 예가체프 워시드 G1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점수입니다. 단, 커핑 스코어는 표준화된 환경에서 산출된 값이므로, 실제 로스팅과 추출 환경에 따라 컵 퀄리티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Q. 이 생두, 에스프레소로 추출해도 괜찮을까요?

A. 가능하지만 권장 포인트가 달라집니다. 에스프레소는 고압·고온 환경이라 내추럴의 발효 향미가 더 강하게 추출됩니다. Moderately Dark(1차 크랙 후 1분 45초 전후) 이상으로 로스팅해 바디감과 달콤한 쓴맛이 보완된 상태에서 추출하는 것이 더 안정적입니다. 미디엄 포인트 그대로 에스프레소를 뽑으면 산미가 예리하게 튀고 발효 뉘앙스가 과하게 부각될 수 있습니다. 제가 테스트한 결과, 이 생두는 핸드드립과 콜드브루에서 진가가 가장 잘 드러났습니다.

 

결론

에티오피아 첼바 내추럴 예가체프 G1은 스펙만 놓고 보면 완성도 높은 생두입니다. 그러나 제가 수천 번의 로스팅 끝에 배운 것은, 생두의 스펙이 곧 컵의 품질로 자동 변환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고밀도 생두가 요구하는 열 침투 전략, 내추럴 가공이 만들어낸 당 함량의 특성, 그리고 1차 크랙 이후 60초 안에 이루어지는 열량 제어까지, 이 모든 변수가 맞아떨어졌을 때 비로소 딸기와 장미, 메이플 시럽이 컵 안에서 살아납니다.

로스팅 기기를 직접 개발하고 추출을 설계하면서 제가 가장 즐거운 순간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이론이 실전과 맞닿는 순간, 생두가 가진 최대 잠재력이 잔 속에서 터질 때의 그 감각은 수치로 다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 생두를 처음 다루는 분이라면 미디엄 포인트를 목표로 2~3회 테스트 로스팅을 진행하고, 추출은 92℃ 이하에서 충분한 뜸들이기와 함께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그다음은 컵이 스스로 이야기합니다.

 

 

참고: 출처: Ethiopian Coffee and Tea Authority (ECTA) / 출처: Ethiopian Coffee Association (E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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