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랫동안 '에티오피아 커피 = 에어룸(Heirloom)'이라는 공식에 의심 한 번 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커핑 세션에서 74158이라고 적힌 생두 샘플을 처음 받아 든 순간, 제가 그동안 얼마나 좁은 기준으로 에티오피아를 바라봤는지 단번에 깨달았습니다. 에어룸과 74시리즈 신품종 사이의 거리는, 그냥 조금 다른 향'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에어룸, 수백 년이 빚어낸 복잡함
에티오피아 커피를 처음 공부할 때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단어가 에어룸(Heirloom)입니다. 에어룸이란 수백 년간 에티오피아 야생 숲에서 자연 교배를 거쳐 형성된 재래종 변종들의 집합체를 가리킵니다. 단일 품종이 아니라 수천 개의 유전적 변이체가 혼재하는 개념이라, 같은 '예가체프 에어룸'이라도 농장마다 향미의 결이 조금씩 다르게 표현됩니다.
제가 처음 에어룸 생두를 다뤘을 때 느낀 건, 이 커피가 주는 '은은하고 투명한 복합성'이었습니다. 재스민과 홍차를 떠올리게 하는 섬세한 방향族(aromatic compounds), 그리고 한 모금 머금었을 때 오래도록 입안에 머무는 여운은 확실히 다른 산지에서는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감각이었습니다. 여기서 방향족(aromatic compounds)이란 커피 생두 안에 함유된 휘발성 향기 물질을 말하며, 로스팅 과정에서 열에 의해 변환되어 각 품종 고유의 향미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출처: World Coffee Research (WCR)에 따르면, 에티오피아의 재래종 변종 수는 전 세계 어느 커피 산지와도 비교가 안 될 만큼 방대하며, 이 유전적 다양성이 에티오피아 커피를 스페셜티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려놓은 핵심 배경입니다. 저도 매년 에어룸 생두를 받을 때마다 "이번엔 또 어떤 표정을 보여줄까" 기대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에어룸은 단일 품종이 아닌 수천 가지 재래종 변이체의 집합
- 자스민, 베르가못, 홍차류의 섬세한 방향족 화합물이 특징
- 농장·재배 환경마다 향미 발현이 다르게 나타나는 복잡성 보유
74110이 입안을 강타한 날
74110을 처음 커핑한 날을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로스팅을 막 마친 샘플을 분쇄하는 순간부터 레몬그라스와 자몽껍질 같은 청량한 향이 공기를 채웠고, 커핑 스푼을 입에 가져갔을 때 유기산(organic acids)의 톡 쏘는 선명함이 혀 위에서 터졌습니다. 유기산이란 커피 속에 존재하는 구연산, 사과산, 인산 등의 산 성분으로, 커피의 밝고 청량한 산미를 결정짓는 핵심 물질입니다. 에어룸이 주는 부드러운 산미와는 결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74110은 1970년대 에티오피아 커피 녹병(CBD, Coffee Berry Disease) 피해가 심각해지자, JARC(Jimma Agricultural Research Center, 짐마 농업연구센터)가 일루바보르 지역 메투-비샤리 야생 숲에서 직접 수집한 모수(Mother Tree) 데이터를 바탕으로 선발·릴리스한 품종입니다. JARC란 에티오피아 정부 산하의 커피 전문 연구기관으로, CBD 저항성과 함께 향미 발현 능력을 동시에 목표로 품종 개발을 진행해 온 곳입니다. 즉 74110은 우연히 좋은 품종이 된 게 아니라, 처음부터 과학적으로 선별된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교육 현장에서 74110을 쓰기 시작한 건 이 '직관적인 임팩트' 때문이었습니다. 에어룸의 복합성을 설명하려면 꽤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74110은 한 모금으로 대부분의 수강생이 "아, 자몽이다!"라고 반응합니다. 커피 교육에서 감각 언어를 훈련시키기에 이보다 좋은 교재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74158, 생두 시장을 바꾼 핵과류의 밀도
74158을 처음 로스팅 머신에서 꺼냈을 때 든 생각은 "이 커피, 향의 밀도가 다르다"였습니다. 쿨링 트레이 위에서 식어가는 원두에서 올라오는 황도 복숭아와 살구의 향이 너무 또렷해서, 저도 모르게 두 번 코를 들이댔던 기억이 납니다. 커핑 결과는 예상대로였습니다. 핵과류(Stone Fruit), 즉 복숭아·살구·자두처럼 씨가 딱딱한 과일 계열의 달콤하고 크리미 한 질감이 묵직한 당도와 함께 깔리며, 에어룸의 차(Tea)류 질감에 익숙한 분들에게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느껴집니다.
이 감각 프로파일은 주관적인 인상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2020년 에티오피아 컵 오브 엑셀런스(CoE) 대회에서 74158은 단일 품종으로 출품되어 90점 이상의 공식 스코어를 기록하며 핵과류 향미가 공식적으로 검증되었습니다. CoE(Cup of Excellence)란 각국 최고 품질의 커피를 선발하는 국제 품평회로, 90점 이상은 전 세계 최상위 스페셜티 등급에 해당합니다. 제가 직접 CoE 출품 이후 시장에 풀린 74158 롯트를 받아 커핑 했을 때, 데이터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Ethio Coffee의 분석에서도 에티오피아 JARC 릴리즈 품종들이 에어룸 대비 향미 발현도(flavor expression)가 선명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향미 발현도란 품종이 가진 향미 포텐셜이 로스팅과 추출을 거쳐 실제 컵에서 얼마나 명확하게 드러나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74158은 이 수치가 특히 높게 나타납니다. 카페 창업을 준비하는 분들을 돕는 입장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손님에게 "복숭아 향 커피"라고 소개할 수 있는 메뉴는 스토리텔링과 재구매율 두 가지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강력한 카드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에어룸이랑 74시리즈, 카페 메뉴로는 어떤 게 더 좋은가요?
A. 제 경험상 감도 높은 단골 고객층을 위한 시그니처 싱글 오리진이라면 에어룸의 복합적인 여운이 강점입니다. 반면 처음 스페셜티를 접하는 손님에게 "커피에서 과일 향이 난다"는 경험을 주고 싶다면 74158이나 74110이 압도적으로 효과적입니다. 저는 두 라인을 함께 운영하는 것을 권합니다.
Q. 74시리즈 생두는 에어룸보다 가격이 많이 비싼가요?
A. 분리 수확·품종 구분이 명확한 74158 CoE 상위 롯트는 에어룸 대비 가격이 상당히 높게 형성됩니다. 품종 발현도가 높고 생산량이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모든 74시리즈가 고가는 아니며, 등급과 롯트 구성에 따라 가격 편차가 큽니다. 구매 전 큐그레이더 커핑 리포트를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Q. 74110과 74158을 로스팅할 때 에어룸이랑 다르게 접근해야 하나요?
A. 제가 직접 테스트해보니 74시리즈는 에어룸보다 향미 발현이 선명한 만큼, 과도한 (development) 로스팅보다 향미 포텐셜을 살리는 라이트~미디엄 프로파일이 효과적이었습니다. 특히 74110은 산미가 강점인 품종이라 열을 너무 오래 가하면 산미가 날아가 특징이 사라집니다. 에어룸보다 섬세한 온도 관리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Q. JARC 품종과 에어룸, 어느 쪽이 병충해에 강한가요?
A. JARC가 74시리즈를 개발한 출발점 자체가 CBD(커피 열매 병) 저항성 확보였습니다. 에어룸은 유전적 다양성 덕분에 일부 저항성을 보이기도 하지만 균질한 내병성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74시리즈는 처음부터 저항성을 검증하고 선발한 품종이라, 농장 관리 측면에서 더 안정적인 생산성을 보입니다.
결론
에어룸이 나쁜 것도 아니고, 74시리즈가 무조건 우월한 것도 아닙니다. 제가 매년 에티오피아 생두를 다루면서 내린 결론은, 이 두 계열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역할을 가진 도구라는 것입니다. 수 세기의 자연이 만들어낸 에어룸의 은은한 복합성과, 현대 과학이 정밀하게 선발한 74시리즈의 화려한 직관성을 모두 다룰 수 있다면, 그것이 스페셜티 커피 시장에서 진짜 경쟁력이 됩니다.
커피를 교육하고 창업을 돕는 입장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이 시대는 두 가지 언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는 로스터와 바리스타가 유리합니다. 에어룸의 감성적 여운으로 이야기를 열고, 74158의 복숭아 한 방으로 손님을 사로잡는 것—그 조합을 직접 실험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World Coffee Research (WCR) / Ethio Coffee — Ethiopian Heirloom Coffee Variet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