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를 내렸는데 어떤 날은 20초 만에 물처럼 빠지고, 어떤 날은 40초가 지나도 몇 방울씩 떨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원두와 같은 머신을 사용했는데도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대표적인 이유가 바로 분쇄도(Grind Size)입니다.
에스프레소에서 분쇄도는 단순히 원두 입자의 크기를 의미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물이 커피층을 통과하는 속도, 물과 커피가 접촉하는 정도, 추출되는 성분의 양에 영향을 주며 결과적으로 맛과 향까지 바꿀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에스프레소는 무조건 곱게 갈수록 맛있어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가늘게 갈면 오히려 물의 흐름이 지나치게 제한되거나 커피층 내부의 물길이 불균일해질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분쇄도가 커피 추출에 미치는 영향과 에스프레소 분쇄도를 조절하는 방법을 원리부터 실전까지 알아보겠습니다.

핵심 요약
에스프레소 분쇄도를 가늘게 하면 일반적으로 커피 입자의 표면적이 커지고 커피층의 물 통과 저항이 증가합니다. 반대로 굵게 갈면 물이 비교적 빠르게 통과합니다. 하지만 실제 추출은 평균적인 입자 크기뿐 아니라 미분(fines)의 비율과 전체 입자 크기 분포에도 큰 영향을 받습니다.
분쇄도는 쉽게 말해 원두를 그라인더로 갈았을 때 만들어지는 커피 입자의 크기입니다. 보통 가는 분쇄(Fine), 중간 분쇄(Medium), 굵은 분쇄(Coarse)처럼 표현합니다.
다만 실제로 그라인더에서 나온 커피 입자는 모두 똑같은 크기가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큰 입자도 있고 매우 작은 입자도 함께 존재합니다. 따라서 커피의 분쇄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단순히 '몇 단계로 갈았다'는 정보만 보는 것보다 입자 크기 분포(Particle Size Distribution)를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에스프레소처럼 높은 압력 아래에서 물이 짧은 시간 동안 커피층을 통과하는 방식에서는 이러한 입자의 크기와 분포가 물의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1. 입자가 작아지면 표면적이 증가한다
원두 한 알을 그대로 물에 넣는 경우와 아주 작은 조각으로 잘게 부순 뒤 물에 넣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잘게 부순 쪽이 물과 접촉할 수 있는 면적이 훨씬 많아집니다.
커피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두를 더 잘게 분쇄하면 물이 접촉할 수 있는 표면이 증가하고, 입자 내부에서 성분이 이동해야 하는 거리도 짧아집니다. 따라서 다른 조건이 같다면 용해 가능한 커피 성분을 물이 추출하기 쉬워집니다.
2. 에스프레소에서는 물의 흐름까지 달라진다
에스프레소에서 중요한 것은 표면적만이 아닙니다. 분쇄된 커피를 포터필터 바스켓에 넣으면 수많은 커피 입자가 모여 하나의 커피층, 즉 커피 베드(Coffee Bed)를 만듭니다.
입자 사이에는 물이 지나갈 수 있는 작은 공간들이 있습니다. 커피를 더 가늘게 분쇄하면 일반적으로 커피층을 통과하는 물의 저항이 커지고 유속은 느려집니다. 반대로 분쇄도를 굵게 하면 물이 상대적으로 쉽게 통과할 수 있어 추출 시간이 짧아질 수 있습니다.
쉽게 기억하는 방법
가는 분쇄 → 물이 통과하기 어려워지는 방향 → 추출 시간이 길어지는 경향
굵은 분쇄 → 물이 통과하기 쉬워지는 방향 → 추출 시간이 짧아지는 경향
여기서 한 단계 더 알아야 할 개념이 미분(Fines)입니다. 미분은 그라인딩 과정에서 발생하는 매우 작은 커피 입자를 뜻합니다.
2024년 Scientific Reports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에스프레소 분쇄 입자 가운데 작은 입자들의 비율이 커피층의 투과성과 추출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결과를 제시했습니다.
연구에서는 100㎛보다 작은 입자를 미분의 지표로 사용했습니다. 미분의 비율이 증가하면 커피층의 투과성이 낮아지고 물의 유속이 감소하면서 에스프레소 추출 시간이 길어지는 결과가 관찰됐습니다.
즉, 에스프레소에서는 단순히 '가는 분쇄인가, 굵은 분쇄인가'만으로 모든 추출 결과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같은 정도의 분쇄도처럼 보여도 그라인더가 만들어내는 전체 입자 분포와 미분의 양이 다르면 물의 흐름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 구분 | 가는 분쇄 | 굵은 분쇄 |
|---|---|---|
| 입자 크기 | 상대적으로 작음 | 상대적으로 큼 |
| 접촉 가능한 표면적 | 증가하는 방향 | 감소하는 방향 |
| 커피층의 저항 | 일반적으로 증가 | 일반적으로 감소 |
| 물의 흐름 | 느려지는 경향 | 빨라지는 경향 |
| 추출 시간 | 길어지는 경향 | 짧아지는 경향 |
| 실전 조절 | 샷이 너무 빠를 때 고려 | 샷이 지나치게 느릴 때 고려 |
다만 이 표는 다른 변수를 동일하게 유지했을 때 이해하기 위한 기본 원리입니다. 실제 에스프레소에서는 원두의 종류와 로스팅 정도, 도징량, 추출량, 물의 온도, 그라인더 특성, 커피층의 준비 상태 등이 동시에 영향을 미칩니다.
가정이나 카페에서 입자 크기를 마이크로미터 단위로 측정하면서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실전에서는 일정한 레시피를 정한 뒤 추출 결과를 보고 분쇄도를 조정하는 방법이 가장 이해하기 쉽습니다.
1단계. 도징량과 목표 추출량을 먼저 고정한다
예를 들어 바스켓에 넣는 원두의 양을 18g으로 정했다면 매번 비슷한 양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컵에 나오는 에스프레소의 목표 중량도 정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도징량과 추출량을 계속 바꾸면서 분쇄도까지 동시에 조절하면 어떤 변수가 결과를 바꿨는지 판단하기 어려워집니다. 처음에는 가능한 한 한 번에 하나의 변수만 변경하는 것이 좋습니다.
2단계. 실제 추출 흐름을 확인한다
같은 도징량과 목표 추출량을 유지했는데 목표 중량에 지나치게 빨리 도달한다면 분쇄도가 너무 굵은 방향인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추출이 거의 진행되지 않을 정도로 느리다면 지나치게 가는 분쇄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3단계. 조금씩 조절하고 다시 추출한다
샷이 너무 빠르다
→ 분쇄도를 조금 더 가늘게 조절
샷이 지나치게 느리다
→ 분쇄도를 조금 더 굵게 조절
추출 흐름은 안정적이다
→ 맛을 확인한 뒤 미세 조정
중요한 것은 한 번에 큰 폭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에스프레소용 그라인더는 작은 조정만으로도 추출 시간이 눈에 띄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에스프레소 입문자는 흔히 특정 추출 시간을 정답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추출 시간은 목표가 아니라 추출 상태를 판단하기 위한 하나의 지표로 보는 편이 좋습니다.
같은 시간 동안 추출했다고 해서 반드시 같은 맛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원두의 특성, 로스팅, 추출 비율과 입자 분포 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실제 연구에서도 빠른 에스프레소 추출이 반드시 매우 낮은 추출 효율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비교적 짧은 시간에도 상당한 양의 용해 성분이 추출될 수 있다는 결과가 보고됐습니다.
따라서 '무조건 몇 초를 맞춰야 한다'고 접근하기보다 같은 레시피에서 분쇄도 변화가 추출 속도와 맛을 어떻게 바꾸는지 관찰하는 것이 훨씬 유용합니다.
커피 추출의 기본 원리도 함께 알아보세요.
분쇄도뿐 아니라 물과 커피의 비율, 시간, 온도가 추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해하면 에스프레소 세팅이 훨씬 쉬워집니다.
'가늘게 갈수록 추출이 잘된다'는 원리만 생각하면 가능한 한 곱게 분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에스프레소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분쇄도가 지나치게 가늘어지면 커피층의 투과성이 크게 낮아져 물의 흐름이 심하게 제한될 수 있습니다. 특히 미분의 양까지 많아지면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수 있습니다.
또한 커피층 전체에서 물이 항상 완벽하게 균일하게 이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저항이 낮은 부분이 생기면 물이 특정 경로로 집중되는 채널링(Channeling)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같은 에스프레소 안에서도 일부 커피는 물과 충분히 접촉하고 다른 부분은 상대적으로 덜 추출되는 불균일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좋은 에스프레소를 위해서는 단순히 가장 가는 분쇄도를 찾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흐름과 균일한 추출이 가능한 지점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분쇄도를 바꿨는데도 추출 결과가 매번 크게 달라진다면 다른 변수도 함께 점검해야 합니다. 에스프레소의 흐름은 분쇄도 하나만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매번 도징량이 일정한지 확인합니다.
✔ 커피가 바스켓 안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지 확인합니다.
✔ 탬핑 과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지 살펴봅니다.
✔ 원두가 바뀌었다면 기존 분쇄도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 그라인더 조정 후 남아 있던 이전 분쇄 원두의 영향을 고려합니다.
✔ 추출 시간뿐 아니라 실제 컵에 나온 에스프레소의 중량도 확인합니다.
특히 원두가 달라지면 같은 그라인더 설정에서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로스팅 상태와 원두의 물리적 특성 등이 분쇄 결과와 추출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숫자로 표시된 그라인더 설정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보기보다는 현재 사용하는 원두에 맞춰 다시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 분쇄도가 가늘어지면 입자의 표면적은 증가합니다.
✔ 가는 분쇄는 일반적으로 커피층의 물 통과 저항을 높입니다.
✔ 굵은 분쇄는 일반적으로 에스프레소의 흐름을 빠르게 만듭니다.
✔ 평균 입자 크기뿐 아니라 미분의 양과 입자 크기 분포도 중요합니다.
✔ 미분이 많아지면 커피층의 투과성이 낮아지고 추출 시간이 길어질 수 있습니다.
✔ 샷이 너무 빠르면 조금 더 가늘게 조절해 볼 수 있습니다.
✔ 샷이 지나치게 느리면 조금 더 굵게 조절해 볼 수 있습니다.
✔ 분쇄도를 조절할 때는 도징량과 목표 추출량을 가능한 한 일정하게 유지합니다.
✔ 특정 추출 시간을 절대적인 정답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 최종 판단은 추출 흐름과 수율뿐 아니라 실제 맛을 함께 고려합니다.
에스프레소 분쇄도는 추출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조절 변수 가운데 하나입니다. 커피를 더 가늘게 분쇄하면 표면적이 증가하는 동시에 커피층의 물 통과 저항도 달라지고, 그 결과 추출 속도와 추출되는 성분의 양이 변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 연구를 보면 단순한 평균 입자 크기만으로는 에스프레소의 추출 특성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아주 작은 입자인 미분의 비율과 전체적인 입자 크기 분포가 커피층의 투과성과 추출 시간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좋은 에스프레소 분쇄도를 찾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특정 숫자를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도징량과 목표 추출량을 고정하고, 실제 추출 속도와 맛을 확인하면서 분쇄도를 조금씩 조절하는 것입니다.
샷이 너무 빠르면 조금 더 가늘게, 지나치게 느리면 조금 더 굵게 조절하는 기본 원리에서 시작해 보세요. 여기에 미분, 입자 분포, 원두 상태와 추출 균일성까지 이해하기 시작하면 에스프레소 분쇄도를 훨씬 체계적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1. Smrke, S., Eiermann, A. & Yeretzian, C. (2024). The role of fines in espresso extraction dynamics. Scientific Reports, 14, 5612.
2. Smrke, S. et al. (2020). Extraction of single serve coffee capsules: linking properties of ground coffee to extraction dynamics and cup quality. Scientific Reports, 10.
3. Uman, E. et al. (2016). The effect of bean origin and temperature on grinding roasted coffee. Scientific Reports, 6, 244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