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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허니 프로세스 (점액질, 에어로스터기, 콜드브루)

by oz4832 2026. 5. 17.

 

 

처음 과테말라 허니 프로세스 생두를 받아 들었을 때 조금 당황했습니다.. 손에 묻어나는 끈적한 감촉과 달콤한 냄새. "이걸 어떻게 볶아야 하지?" 하는 긴장감이 들었습니다.. 그날 이후 수십 번의 실패와 수정을 거쳐 지금의 레시피에 이르렀고 그동안의 과정을 남기려 합니다.

 

점액질이 만들어내는 단맛의 비밀

 

허니 프로세스(Honey Process)란 커피 체리의 겉껍질을 벗겨낸 뒤, 알맹이를 감싸고 있는 점액질(Mucilage)을 씻어내지 않고 그대로 햇볕에 말리는 가공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커피 생두가 당분 가득한 막을 두른 채 건조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점액질의 당 성분이 생두 속으로 스며들어 특유의 꿀 같은 단맛과 묵직한 바디감이 형성됩니다.

 

일반적으로 워시드(Washed) 방식은 점액질을 물로 완전히 제거해 깔끔하고 산뜻한 맛을 냅니다. 반대로 내추럴(Natural) 방식은 체리 전체를 그대로 말려 과일향이 진하게 남습니다. 허니 프로세스는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데, 제가 직접 세 가지를 모두 추출해서 비교해 보니 허니 특유의 균형감은 정말 독보적이었습니다. 워시드의 깔끔함을 유지하면서도 내추럴에서나 느낄 수 있는 풍부한 단맛이 동시에 살아있었습니다.

 

과테말라는 커피 재배에 유리한 조건을 두루 갖춘 나라입니다. 화산재 토양은 미네랄이 풍부해 생두에 복합적인 풍미를 더하고, 고도 1,500m 이상의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원두는 생장 속도가 느려 밀도가 높아집니다. 이 환경이 허니 프로세스와 만나면 시너지가 상당합니다. 과테말라 커피 생산자 협회인 아나카페(Anacafé)에 따르면 과테말라 커피의 약 60% 이상이 해발 1,200m 이상 고지대에서 재배된다고 합니다. 출처: Anacafé](https://www.anacafe.org)

 

허니 프로세스의 건조 과정에서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게 있습니다. 건조 중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생두를 하루에도 여러 번 뒤집어 줘야 하는데, 이 작업이 생각보다 훨씬 고됩니다. 생산 농장 측에서는 인건비와 관리 비용이 워시드 대비 훨씬 높다고 했습니다. 한 잔의 커피에 그만한 손길이 담겨 있다는 걸 알고 나면, 이 원두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에어로스터기로 찾아낸 균일한 로스팅

 

제가 나이와 상관없이 여전히 새로운 기계를 만들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허니 프로세스처럼 까다로운 원두를 초보 로스터도 제대로 볶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점액질이 잔존하는 허니 프로세스 생두는 일반적인 드럼 로스터기로 볶으면 겉이 먼저 타버리기 쉽습니다. 드럼 로스터기는 회전하는 통 안에서 생두가 뜨거운 드럼 표면과 직접 접촉하며 열을 받는 방식인데, 당 성분이 표면에 남아있는 허니 프로세스 생두는 그 접촉면이 순식간에 탄화되어 버립니다. 저 역시 초기에 수차례 생두를 태워먹었습니다. 꽤 비싼 수업료였죠.

 

그래서 제가 직접 개발한 에어로스터기(Air Roaster)를 적용했습니다. 에어로스터기란 강력한 열풍을 이용해 생두를 공중에 띄우듯 순환시키며 열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드럼 표면과의 직접 접촉 없이 원두 전체에 균일한 열이 가해집니다. 쉽게 말해 에어프라이어처럼 뜨거운 바람으로 고르게 익히는 원리입니다. 이 방식을 적용하고 나서야 비로소 허니 프로세스 고유의 달콤한 아로마(Aroma)가 탄 냄새 없이 살아났습니다.

 

로스팅 후 결과물을 비교해 보면 차이가 확연합니다.

- 드럼 로스터기: 허니 프로세스 적용 시 표면 탄화 빈번, 뒷맛에 떫은 감이 남음
- 에어로스터기: 원두 내외부 균일 가열, 꿀 같은 단맛과 초콜릿 바디감이 온전히 발현
- 로스팅 균일도(Roast Uniformity): 에어 방식이 월등히 높아 추출 재현성이 올라감

 

스페셜티 커피 협회 SCA(Specialty Coffee Association)의 기준에 따르면 스페셜티 등급 원두는 생두 300g 기준 결점두 5개 이하, 커핑 점수 80점 이상을 충족해야 합니다.  [출처: SCA](https://sca.coffee)이 원두가 그 기준을 충족하는 품질을 갖추고 있는 만큼, 로스팅 단계에서 그 잠재력을 날려버리는 건 아깝다는 생각이 항상 있습니다. 장비 개발에 공을 들이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테이스팅 노트, 직접 마셔보고 쓴 기록

 

로스팅 직후 처음 잔을 들었을 때 느낀 감각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잔에 코를 가까이 대기도 전에 달콤한 향이 먼저 코끝에 닿았습니다. 흑설탕을 녹인 것 같은, 하지만 무겁지 않은 그런 향이었습니다.

 

한 모금 마시면 잘 익은 사과의 부드러운 산미가 먼저 지나갑니다. 산미라고 해서 시큼한 게 아니라 과일즙처럼 상큼한 느낌입니다. 그 뒤를 과테말라 특유의 초콜릿 같은 바디감이 받쳐줍니다. 바디감(Body)이란 커피를 마셨을 때 입안에서 느껴지는 무게감과 질감을 뜻하는데, 이 원두는 무겁지 않으면서도 풍성하게 입 안을 채우는 느낌이라 표현하기가 좋습니다. 마신 뒤에도 기분 좋은 단맛의 여운, 즉 애프터테이스트(Aftertaste)가 꽤 길게 남습니다.

 

제 경험상 산미가 강한 커피를 피하면서도 단조로운 커피는 지루하다는 분들에게 이 원두가 딱 맞습니다. 커핑(Cupping)을 진행할 때마다 처음 이 원두를 접한 분들이 한결같이 "이게 커피 맞아요?" 하고 놀라시는 걸 보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커핑이란 커피의 향미를 체계적으로 평가하는 전문 감별 과정을 말합니다.

 

콜드브루로 완성하는 가장 진한 한 잔

 

허니 프로세스 원두를 가장 극적으로 즐기는 방법을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망설임 없이 콜드브루를 선택합니다.

핸드드립으로 추출할 때는 92도 전후의 물을 사용해 천천히 뜸을 들이면 화사한 과일향과 단맛이 균형 있게 살아납니다. 뜸 들이기란 분쇄된 원두에 소량의 물을 먼저 부어 가스를 빼내는 과정으로, 이후 추출의 균일도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단계를 충분히 거치면 과테말라 허니 특유의 향미가 훨씬 선명하게 살아납니다.

 

그런데 콜드브루(Cold Brew)는 차원이 다릅니다. 콜드브루란 뜨거운 물 대신 냉수로 장시간에 걸쳐 천천히 추출하는 방식으로, 열로 인해 날아갈 수 있는 섬세한 향미 성분이 그대로 보존됩니다. 제가 직접 개발한 콜드브루 머신으로 이 원두를 냉장 상태에서 4~5시간 추출하면, 초콜릿 바디감과 단맛이 한층 농축되어 나타납니다. 처음 이 방식으로 뽑아낸 콜드브루를 얼음 잔에 부어 마셨을 때 "바로 이 맛이다"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달콤하면서도 청량하고, 진하면서도 깔끔한 그 균형이 정말 이 원두만이 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60대의 나이에 여전히 새로운 기계를 만들고 로스팅을 하면서 커피를 연구하는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 한 잔이 주는 희열 때문입니다. 물로 편하게 씻어내지 않고 뜨거운 햇볕과 바람을 버텨낸 끝에 완성된 풍미가 커피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있다고 느낍니다.

 

과테말라 허니 프로세스를 아직 경험해보지 못하셨다면, 먼저 핸드드립으로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산미가 부담스럽거나 단순한 쓴맛에 지쳐있다면, 이 원두가 커피에 대한 시각을 바꿔줄 가능성이 큽니다. 그다음은 콜드브루입니다. 한 번 경험하고 나면 다음 잔이 기다려지는 커피, 그게 이 원두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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